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6) 아라1동 아라위 산물

아라1동은 ‘아라위’ 또는 ‘인다라(인다리)’로 불렀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호’ 는 지명 뒤에 붙는 특수한 접미사로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인다리(仁多羅)의 뜻도 확실하지 않다. 아라1동은 새미오름(삼의봉)물과 산천단 소림천, 새미털물, 보미물 등 많은 산물이 마을을 지킨다. 

국태민안을 위해 한라산신제를 지내는 산천단은 소산오름 기슭에 있다. 소산오름은 제주 섬에서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막기 위해 섬에 있는 명산의 모든 혈(穴)을 끊어 버린 중국 송나라 지관 호종단(胡宗旦)이 떠나던 날 밤, 갑자기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진동하여 불쑥 땅 위로 솟았다는 전설이 깃든 오름이다. 그래서 ‘소산’은 ‘솟(出)+안’으로 갑자기 솟아오른 오름이란 뜻이다. 

한라산신제는 한라산 정상에서 지내왔는데 해마다 동상에 걸리거나 죽는 사람이 발생하자 이약동 목사(1470년)는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산천단이라 하고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그리고 소림천은 호종단이 미처 끊지 못한, 산신이 보호하는 한라산의 기운을 간직한 용출수이기에 제수로 사용했다. 예로부터 산은 기운을 널리 펴서 만물을 기른다고 했으며, 기운을 널리 피면 수맥이 길기 때문에 산 위의 샘물이 으뜸이라고 했다. 그래서 소림천 물은 산산제의 제수가 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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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림천(추정).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소림천은 소산오름에 있던 소림사란 절의 용출수지만 기우제나 산신제의 제수로도 사용했던 신성한 물이다. 현재 이 샘으로 추정되는 산물이 공중화장실 뒤편에 한 가닥의 물줄기로 남아 있다. 

예전 산천단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식수나 생활용수로 이용했으며 그 산물터(빨래터)도 있었는데, 산천단 문화재 정비사업을 하면서 이 샘의 중요성에 대한 고증도 없이 없애버려 애석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길 건너편 화장실 동측에 산물을 이용했던 빨래터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지금 사람들이 산천단물이라고 알고 있는 용출수는 1970년대 개인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 발견된 것으로 예전부터 있었던 산천단물이라는 ‘소림천’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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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림천 산물터(빨래터).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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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소유 산천단물(1970년대 발견).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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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단물 용출광경.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산천단 남동쪽에 있는 삼의봉(삼의양오름)에도 오름 중턱에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남사면 우묵한 곳에 있기에 삼의봉을 새미오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오름 이름인 삼의봉에서 ‘삼’은 새미(샘의 제주어)의 ‘새’가 와전되어 숫자 ‘3’을 뜻하는 ‘셋(三)’으로 알고 한자로 써서 ‘삼의’로 표기했다고 전해진다. 산천단 일대는 형제 같은 오름인 소산봉과 서삼봉, 그리고 새미오름이 있는데 이 3개의 오름 중 가장 큰 오름이라서 ‘삼의’라 부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산물은 자그만 웅덩이에 솟는 자연 그대로의 물이다. 그다지 크지 않으나 산짐승들이 옹달샘 역할을 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에 있는 조계종 제23교구 본사인 관음사에도 새미털물이란 산물을 사찰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새미털에서 ‘새미’는 산물을, ‘털’은 산과 평야의 경계란 뜻으로 ‘산과 평야의 경계에 있는 산물(샘)’이란 의미이다. 이 물은 밤나무로 형성된 숲속에 용출되었지만 밤나무 숲은 사라자고 지금은 중생들이 번뇌를 해갈하는 약수물로 관음보살의 정병처럼 치유의 물이 되고 있으며, 절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물을 모아 법당 앞에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최근에 이 못은 메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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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미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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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미털이 만든 관음사 약수.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남국사 남측 경계 길 건너에 독지새미란 산물이 있다. 이 물은 연못처럼 작은 저수지 형태로 숨어 있는 물이어서 용출 지점을 확인할 수 없다. 이 물은 건너편 남국사 경내에서 다시 솟아나와 ‘한없는 수명이 무량하여 한이 없다’란 의미의 무량수각(無量壽閣)의 물이 되고 있다. 이 산물로 무량수각에 연꽃을 피어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염원하듯 사찰 경내에 ‘물 흐르듯 흘러가라’라는 비문이 세워 놓았다. 

'독지'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제주전역에 독지 또는 독짓. 독조란 지명이 여러 지역에 남아 있다. 그리고 독지는 독조가 변화한 것으로, 풍수의 의미로 지세가 독자형(獨子形)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독자(獨子)는 단 하나뿐인 아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 물도 외롭게 홀로 있는 물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지새미가 있는 곳이 지형도 독자형(獨子形)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 물도 홀로 숨겨져 있어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르고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용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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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미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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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미물 용출지점.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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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지새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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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국사 경내에서 독지새미 재용출 지점.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남국사 뒤 산지천 변에서는 보미물이란 산물이 용출한다. 마을주민들은 보배같이 귀한 산물이라서 보미물이라 했다고 하는데, 제주어에서 ‘보미’는 벼의 껍질인 등겨란 뜻으로, 예부터 쌀이 귀한 제주에서 벼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생명수인 보배로운 물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물은 하천가 벼랑 바위 궤(작은 동굴의 제주어)에서 솟는 물로, 예전에는 인다라 웃동네 식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산물로 전략해 버렸다. 이 물 건너편 서측 하천가에는 물을 길러 오던 돌계단과 옛길이 남아 있어 물허벅을 지고 다니던 생명수 길이라는 걸 말해 주고 있다.

산천단이 신성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소림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곰솔의 생명력을 지켜온 산물, 한라산신의 보호 아래 물혈을 지킨 섬의 생명수, 한라산 산신제의 제수로 사용한 신성한 물인 소림천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소림천의 부활은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는 기(氣)가 충만한 산천단에, 용솟음치는 용의 기운을 받는 물을 되살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충분한 휴식과 안식을 주는 ‘파워스폿(Power Spot, 기가 넘쳐흘러 나오는 특별한 장소)’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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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국사 연못(무량수각).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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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국사 경내 비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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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미물 산물터 전경.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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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반에 둘러싸인 보미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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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미물로 가던 옛 물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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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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