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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검의-경찰 사망시점 달라 수사 혼선...개·돼지 사체로 시신 발견지점서 부패 실험

9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교사 살인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제주경찰이 동물 사체를 이용한 전국 최초의 법의학 실험을 벌여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살인 사건은 2009년 2월1일 오전 3시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이모(당시 27세)씨가 제주시 용담동 남자친구 집에서 나온 뒤 자취를 감추면서 시작됐다.

실종 닷새 뒤인 2월6일 서부경찰서는 제주지방경찰청 수사과 지원 4명과 동부경찰서 형사과 4명, 서귀서 수사과 1명 등 9명의 인력을 지원 받아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날 오후 3시20분쯤 제주시 아라동 소재 한 밭에서 이씨 휴대전화와 신분증이 들어 있는 가방이 발견되면서 미궁에 빠진 사건이 반전되는 듯 했다.

하지만 8일 오후 1시50분 이씨는 자신의 집에서 4km 가량 떨어진 애월읍 고내봉 동쪽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 배수로에 누워진 상태였다. 

경찰은 이씨가 목 졸려 질식사한 점, 하의가 벗어진 점 등을 토대로 용의자가 차량을 이용해 성폭행 하려다 살해 한 뒤 사체를 유기한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추적했다.

국립과학연구원의 감식에서 숨진 여교사 유류품과 몸에서 살해 용의자로 추정되는 DNA가 나와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결국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택시기사 3200여명과 용의차량 18대에 대한 정밀감식 등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으나 증거부족으로 특정인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40개월만에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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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과정에서 경찰은 이씨의 사망 시점을 두고 혼선을 빚었다. 부검의가 살해 시점을 사체 발견 직전인 2월6~7일경으로 추정한 반면 경찰은 실종 당일인 2월1일로 판단했다.

부검의는 위 안에 음식물이 많이 소화되지 못했고 사망한지 6~12시간 뒤에 피부에 생기는 자줏빛 얼룩점(시반)이 확인되는 점, 체온, 부패 정도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경찰은 실종후 일주일간 여성이 감금된 흔적이 없고 여러 정황상 실종 당일 살해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시반과 부패 등은 겨울의 기후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봤다.

사망 시점을 두고 혼선을 빚으면서 수사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제팀은 9년이 지난 올해초 사건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사망시점을 추정하기 위한 실험을 결정했다.

국내 법의학의 권위자인 이정빈 가천의대 교수 등 전문가 7명을 초빙해 실험을 진행했다. 개와 돼지 사체를 이용해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5차례에 걸쳐 사체 부패를 재현했다.

시신 발견 당시 온도와 습도 등 조건을 최대한 맞추고 부검 당시 이씨의 몸속에 있던 음식도 비슷하게 동물 사체에 넣어 7~8일간 부패 진행 속도를 확인했다.

경찰은 최근 현장 실험을 마무리하고 데이터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결과는 4월 중순쯤 나올 예정이다.

양수진 제주청 강력계장은 “과거 사망시점에 대한 논란이 있어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망시점을 다시 추정하려 한다”며 “이를 위해 동물사체를 이용한 실험은 전국 최초”라고 설명했다.

양 계장은 “살인사건의 경우 사망시점이 특정되지 않으면 수사의 포커스를 잡기가 어렵다”며 “실험 결과로 사망시점이 특정되면 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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