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4) 오라동·오등동 옥련천 등 용출수

오라동은 ‘모르내(한천)’가에 있는 마을로 모르내가름, 모로내가름, 모로동이라 하고, 오라위, 월라(月羅)로도 불린다. 오라동은 중산간에 해당되는 마을이여서 오래내 하천 물, 굴헝(웅덩이), 인공적으로 판 못 이외에는 물 솟는 곳이 드물었다. 그래서 마을의 식수로 주로 오라내(한내)라는 한천의 굴렁(웅덩이, 沼)에 의존하여 식수를 해결하였다. 

대표적인 산물은 바로 동산물이다. 이 물은 동산교 밑 한천이라는 하천의 바닥에서 연중 솟아나는 용출수다. 바로 밑 낭떠러지로 형성된 깊은 굴렁으로 물이 모여든다. 이 산물은 마을 사람들이 성안(제주성내)으로 오고갈 때 쉬는 곳이기도 하며, 이 물로 목을 추이고 식수로 사용한다. 그런데 목처럼 생긴 깊은 굴렁에서 빨래를 하거나 멱(목욕)을 감다가 익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오라동은 물을 얻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목숨까지 잃은 경우도 있어 마을 안에 못을 파서 봉천수에 의존한 대표적인 으뜨르(중산간의 뜻을 가진 제주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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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천 동산교 교량 밑 동산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물이 귀한 오라동에도 정실동네의 설촌의 근거되는 ‘옥련천(정수암물)’이 있다. 정실(井實)은 이름 그대로 ‘우물’과 ‘좋다’가 합쳐져서 우물이 좋은 동네라는 의미다. 실제 옥련천이란 산물이 솟는다. 옛날에 영구춘화를 보려고 들렁귀로 출행하던 목사가 이 물을 마시면서 주변 경관을 보고 ‘연꽃 잎에 고인 구슬 같은 샘’이라 해서 그 후부터 ‘옥련천(玉蓮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련천은 정실마을에 흐르는 한천 ‘빌레물내’의 지류인 ‘토천(흙내)’ 남서측 주변 암반사이에서 솟는다. 이 물은 오름 가름(가름은 마을의 제주어, 오름 가름은 민오름 남측 기슭에 형성된 마을임)이나 정실사람이 주로 이용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어우눌이나 연미사람들도 사용했다. 이 산물은 암반에서 솟는 물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각통에 받았다고 해서 또 다른 이름으로 정수암(井水岩)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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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련천 입구.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옛 사람들은 응달에 있는 물을 암물(여자물)이라 불렀다. 물이 무거워서 맛있다며 응달의 물을 주로 약수로 사용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옥련천의 물은 산지물보다 더 달고 맛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 산물에는 선녀가 옥황상제가 마실 물을 허벅에 기르러 왔다가 물이 너무 맑아 흐르는 물에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 용출수는 빌레물내의 홍수범람을 막기 위해 하천개수 등으로 사각통은 남아 있지 않으며 탐방할 수 있도록 2010년 일부 개수 작업이 이뤄졌다. 그래도 물이 솟는 구멍과 그 주변은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에서 옹달샘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다른 마을처럼 현대적으로 완전히 개수한 정체불명의 용출수에 비해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산물이 솟는 구멍은 두 군데로, 바위 하나를 경계로 우물 정(井)자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사각형태의 쌍물은 예전 그대로다. 이 산물을 가로지르는 목교를 지나면 산물 위 남쪽에 팽나무가 있고, 그 밑 10평 정도의 암석 궤(굴)에 할망과 하르방을 모신 도노밋당이 있다. 이 당은 사냥을 하며 떠돌아다니던 김씨 하르방이 조수에서 송씨 할망을 만나 이곳 옥련천 부근 정수암 바위그늘집에 정착하여 마을을 설촌하였다는 당이다. 맑은 구슬 같은 옥련천이 있어 여기에 정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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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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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련천.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록북로 열안지오름 남쪽기슭 한천 지류인 하천에 열안지물이 있다. 한자표기로 열안지(列雁地)의 ‘안’은 기러기(안 雁) 혹은 알(란 卵) 의미를 쓰고 있어 오름이 외형이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나 “새의 알을 닮았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초대 제주시장이 열안지에서 살았다고 하며 이 용출수를 식수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때 살던 집터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물은 1960년대에 수로를 만들어 배수지로 보낸 다음, 상수용 식수로 사용하던 귀한 물이다. 한 때 오라골프장과 탐라교육원에서 이 물을 사용했다. 지금도 궤의 바위 돌 틈에서 솟아나오고 있으며 당시 상수도 시설을 했던 원형통과 도관들이 유물로 남아 있다. 

동이물은 열안지물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진 열안지오름 서남쪽에 있는 산물이다. 물이 솟는 장소가 동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물은 주변의 돌을 이용하여 사각통을 만들고 그 안에서 물이 솟아나게 한 옹달샘처럼 숨어 있는 용출수다. 이 물은 제주4․3 이전에 화전민들이 숯을 구우며 살던 목장지대의 식수다. 우마나 산짐승들에게도 귀한 생명수였다. 이 물 위에는 가메물이라고 하여 백중이나 처서날이면 오라동 사람들이 찾아와 물 맞는 곳이 었다. 지금은 이 산물들은 무속인들이 무단 점령하여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마냥 방치해 두지 말고 용출수 보호차원에서 관리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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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물이 만든 소(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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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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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안지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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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안지 수원시설(배수시설).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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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안지 수원시설(시멘트로 만든 인공수로).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오드싱이라 했던 오등동은 영구춘화로 알려진 들렁귀가 있는 마을로, 말을 키우는 목자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같이, 함께’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고다시’란 마을이 오드싱과 함께 오등동을 만들었다. 이 마을에도 작지만 마을을 지키는 용출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설새미는 4․3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설새미는 마을 서쪽에 있는 산물이란 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원이름은 섯새미이다. 이 산물은 한북로에서 죽성길로 가면 볼 수 있는데, 죽성마을 일대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한 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산물 일대에 일본군이 전초기지를 만들어 주둔했었고 4․3 당시에는 11연대 군인들이 천막을 치고 숙영했던 군 주둔소다. 당시 군인들이 이 산물에 주둔하면서 오등리와 주변 마을의 희생이 컸다고 한다. 지금 산물은 허물어지고 1987년이라고 쓴 일부 파손된 시멘트 물통 하나만 남겨 놨지만 물통 안에는 용출수가 여전이 솟아나와 4․3의 넋과 잃어버린 마을의 애환을 달래고 있다. 2014년 아라동에서는 ‘설새미 군주둔소 터’라는 4․3유적지 비문 세웠는데, 이 때 산물도 같이 복원했다면 지난 역사의 아픔을 상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죽성 동길에 통물이란 산물도 있다. 통물은 물통이란 뜻으로 암층 바로 위 함몰된 토층에서 스며나듯 용출되는 물이다. 입구에는 누군가 덕천수라고 써 놓았다. 이 물은 사각통에 지붕을 덮인 상태로 보전되고 있는데, 물통 관리가 허술하여 설새미 같이 사라질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단지 물 입구에 서 있는 왕벚나무만 수문장처럼 물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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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새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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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새미 군주둔소 터’인 4․3유적지.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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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손 방치된 설새미.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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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물(덕천수).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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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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