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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 여름 굼부리.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제주섬에서 돌은 모든 경계의 지표석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인 포구에도, 현무암 밭담에도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산담(墓墻)에도 안과 밖을 이어주는 신문(神門)에도 도로 경계를 가름한다. 사람들은 밭담 안에서 경계 돌을 쌓아 농사를 짓고, 돌로 원담을 바다에 쌓아 고기를 잡고, 돌로 우영 팟 주위를 둘러 우잣돌안 집에 살면서 올레 정낭문을 열고 닫으며 살아간다. 돌담 안에서 태어나 살아가 돌담 안으로 죽고 가는 삶이 제주 사람들이 지닌 운명이다. 

제주에 돌은 제주인의 뼈와 살이다. 한 마디로 죽은 자들은 묘 산담의 신문 안에 살고, 산 자들은 초가지붕의 문 안에 산다. 두 공간 연결체가 올레이다. 제주 사람의 올레(Olleh)는 거꾸로 읽으면 ‘Hello’가 된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 평면에 존재하지만 경계만 달리하는 철학의 목소리가 올레의 몸짓으로 나타낸 것이다. 제주는 곡선의 나라이다. 오름도 밭담도 초가지붕도 곡선이다. 직선이 인간이 만든 선이라면, 곡선은 신(神)이 만든 선이다. 천체, 지구, 사람의 몸까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은 곡선으로 이뤄진 물체를 보거나 만질 때 편안함을 느낀다. 휴대폰도 네모진 곡선이다.

제주섬은 유선형 타원곡선으로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다해도 좋을 온전한 배(Ship) 모양이다. 2만 2000km 흑용만리(黑龍萬里) 곡선 밭 담은 영혼이 바람이 되어 타고 다니는 영혼의 길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올레 담, 돌담, 장담 등 모두 곡선 돌담이다. 돌담은 밭이나 집 울타리 경계를 표시하면서 소나 말의 침범을 막고 바람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 돌의 삼촌(Uncle)은 바람이다. 바람이 돌을 쌓았다. 제주 바람은 연 평균 초속 4.8m/s로 늘 세차게 분다. 돌담은 정해진 모양 없이 얼키설키 쌓아지고, 돌 사이의 틈새 돌트멍(Window)로 인해 바람이 불고 지나지만 돌담은 끄떡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돌이 이웃과 의지하면서 서로 버티는 상생과 돌담이 연결체의 대칭 때문이다. 이것은 돌과 돌이 ‘수눌음’네트워크(Networks)다. 

제주 특유의 사회관습 괸당(Social Custom Family Networks)도 돌의 수눌음에서 왔다. 수눌음(手積)을 풀어쓰면 ‘손들을 눌다’가 된다. 눌다는 쌓는다는 뜻으로, 손들을 쌓아 서로 도와 가면서 농사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눌은 보리눌, 촐 눌 등으로 쓰인다. 보리나 소꼴을 원기둥으로 쌓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괸돌은 고인돌에서 비롯됐는데, 순 우리말인 고인돌은 고대 부족 국가 지배계층의 무덤 또는 제단을 의미하며, 이 단어의 유래는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괸돌(支石) 또는 ‘고인’돌에서 왔다. 돌을 쌓으면 돌담이 되고, 밑받침 되는 돌은 괸돌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음 돌을 다시 얹으면 괸담(礎墻)이 되고, 돌과 돌의 수눌음(Neighbor Cooperation Culture)시작이다. 괸담은 제주인의 관습상 발음 변화(口語体)가 되면 괸당이 되며, 괸당은 제주인의 돌담문화에서 꽃 핀 제주 특유의 수눌음 문화의 연결이다.

제주 사람들이 괸당에 그렇게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온갖 위협들을 이겨내기 위해선 이웃간 촌락내혼(村落內婚)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게 큰 이유이다.

괸당의 탄생배경은 제주의 자연 환경과 국가 사회적 현상 때문이다. 과거 제주는 삼재도(三災島)라 불리며 수재(水災), 풍재(風災), 한재(旱災)로 흉년이 상당기간 지속됐다. 특히 조선 영조(1739년)과 정조 때 심했다. 김만덕은 굶어 죽는 백성을 위해 구휼을 했다. 흉년을 이기지 못해 뭍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제주도민에게 출국 금지령이 200년간(1629-1823) 내려졌다. 몽고 원나라 제주지배 100년(1273-1373)과, 1948년 4.3 사건도 이런 의미에서 함께 읽힌다. 따라서 항상 바람 부는 제주는 사람들을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괸당문화 탄생 배경이다. 제주에서 늘 부는 바람은 24시간 제주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제주 바람은 제주사람에게는 ‘Wind Watch’이다.

수눌음은 쿠로시오(黑潮海流, Kuroshio Current) 파도와 제주섬 돌바위가 수눌어지면서 제주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타원형(slant) 곡선의 섬으로 만들었다. 쿠로시오는 북태평양 서부와 일본 열도 남쪽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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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인근 해류의 흐름.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제주도 위치를 보면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로 일본 규슈 서쪽을 흐르는 쓰시마해류에서 갈라진 일분파로, 제주 남서쪽을 스쳐 황해로 흐른다. 대체로 황해의 중앙을 북상하는데 봄과 여름에는 비교적 강하게 북상하나 가을과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에 밀려서 북상의 힘이 약해진다. 제주해류는 발해만(渤海灣)에 이르면 다시 밀려서 중국 본토 연안을 따라 남류한다. 유속은 매우 느려서 시속 1km 미만으로, 겨울에는 경기만(京畿灣) 이북까지도 미친다. 따라서 조기와 같은 회유 어족(回遊魚族) 등은 겨울 동안에는 수온이 낮아 체류하지 못하고, 수온이 높은 남쪽 수역으로 남하한다. 곡선 파도와 제주섬의 경계돌담이 서로 수눌어지면서 타원 곡선형태 제주가 다듬어졌다.

제주 바람이 24시간 불면서 제주 사람에 안부를 물으며, 제주 사람의 말과 수늘어진다. 바람 소리는 마치 ‘셔, 셔’라고 들린다. 제주 사람들은 말씨 끝마다 아방, 어벙, 할망처럼 ‘ㅇ’이 붙는다.

한라산 등선 200고지 벨트의 중산간 마을 역사는 제주의 목축과 궤를 같이한다. 제주에서 목축의 시작은 삼성 신화에 송아지와 망아지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인듯 하다. 이곳은 날씨가 따뜻하고 한라산 200고지 등성이 중산간에 펼쳐진 넓은 초원지대에 풀들이 풍부하며 사나운 짐승이 없어서 소와 말의 번식에는 가장 알맞은 곳이다. 고려 문종 때 이미 좋은 말을 바친 기록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말을 기른 것은 원나라에서 이곳을 지배하면서부터이다. 1276년(충렬왕 2년) 원에서는 말 160필을 가져다가 수산평(水山坪)에 놓아먹였다. 원이 멸망한 뒤 이곳에서 기르던 말들은 고려에 귀속되었다가,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에 그대로 인계되었다. 조선에서는 말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여 마정(馬政)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처음 원에서 말을 기를 때에는 목장이 해안 평야지대였으므로 백성들의 농작물에 피해가 많았다. 

1429년(세종 11년)에 고득종(高得宗)은 목장을 한라산 등성이로 옮겨 담장을 쌓도록 아뢰었다. 이 건의에 따라 나라의 말들을 20소(所) 60둔(屯)으로 설치하였다. 1702년(숙종 28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의 《남환박물(南宦博物)》에 의하면, 당시 목장이 63곳이었는데,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1704년(숙종 30년) 송정규(宋廷奎) 목사는 불량한 목장은 버리고 작은 목장은 큰 목장으로 합쳐서, 모두 10소장(所場)으로 나누었다. 당시 상황을 삼읍별로 보면, 제주목은 일소장에서 육소장까지, 대정현은 칠팔소장, 정의현은 구소장에서 십소장이다. 산장은 남원 녹산장, 표선이산장, 침장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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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10소장 목장도.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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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조사한 오름 분포 현황. 사진=이문호. ⓒ제주의소리

1960~70년 당시 형편이 어려운 중산간 집안은 알드르 버스 정류장까지 두 세 시간 자갈 밭 길을 걸어 물건을 사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곤 했다. 여름철 가뭄이 들면 봉천수가 말라 물 걱정이 말이 아니었다. 

소소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당시 광챙이 웃드르에서 새신부를 구하러 알드르 비바리에 청혼을 했다. 그러나 물도 없고 차도 안다니는 마을이라면서 퇴짜를 맞았다. 40년 후, 그는 세계적인 학자가 됐다. 

제주 문화는 알드르(下野)에서 웃드르(上野)로 이동한지 오래다. 제주도 촌락은 해변가 용천수 중심으로 형성이 됐는데 1960년대 봉천수에서 수돗물로 바뀌면서 제주도 200고지 중산간이 달라졌다. 교통문제 해결도 한 몫을 했다. 문화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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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호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중산간에는 많은 오름과 곶자왈과 벵디가 있다. 그 곳 속에 제주물이 화산 암반과 수늘어 지면서 지하 420m를 흘러내린다. 화산 암반수가 똑똑 떨어지면서 모이기까지 약 19년간 흘러내린다. 물은 약 16억 7600만톤이 매장돼 있다. 한라산 속 큰 컵에 모이는 물은 바다로 흘러내리고 순수 이용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중산간 오름과 곶자왈 숨골은 제주도 생명수를 저장하는 저수지인 셈이다. 

제주에서 자연수 물을 빼면 제주도는 한마디로 시체다. 제주에 물은 제주인의 목숨과 같음 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전자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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