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33. 길거리 조형물 하나라도 제대로 관리하는 시스템 필요
 
요즘 부산시가 구설수에 올라 큰 고민에 빠졌다. 한 구청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에 있던 미국 작가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이 낡고 흉물스럽다고 철거한 뒤 고철로 버린 사건 때문이다. 문제는 철거계획을 작가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부산에 유치했던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도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은 2010년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국제 공모를 거쳐 설치한 것으로 8억 원이라는 큰 예산을 들인 것인데 정작 관할 구청에서는 어떤 공론화 절차도 없이 처리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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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임의 작업. 철거 전 설치 모습. 사진: 오마이뉴스.

이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국내 미술인들의 SNS에서 성토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언론을 타고 확산되어 급기야 작가의 유족에게 그 소식이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펜하임은 미국의 유명작가로 부산의 작품을 제작한 이듬해인 2011년 사망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확산의 속도는 빨랐다. 참고로 그의 작업은 세계 전역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대형 공공미술로 유명하다. 이 소식을 들은 작가의 유족은 부산비엔날레 측에 예술 창작에 나쁜 선례가 된다는데 동의하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부산 지역의 언론도 ‘이게 부산의 문화 수준인가?’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비엔날레와 부산영화제로 한껏 위상이 높아 보였던 부산의 자존심이 사건 하나로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제주의 공공미술 관리는 안녕한가요?’ 

이 사건을 보면서 제주의 문화행정도 이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할 때라고 본다. 

사실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주의 문화행정의 위태로움을 보여준 사건이 최근 있었다. 한 작가가 만든 혜은이의 노래비가 산지천 언저리에 2014년 세워져 오고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곤 했다. 그런데 산지천과 탐라문화광장 사업으로 일대가 재정비되면서 작가에게 문의도 없이 노래비가 인근 구석진 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작가가 분통을 터트리며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이 몇 달 전 일이다. 

산지천의 혜은이 노래비, 이전하기 전 원래의 설치 모습. 사진 양은희.jpg
▲ 산지천의 혜은이 노래비. 이전하기 전 원래의 설치 모습. 사진: 양은희.

이와 유사한 사건은 창작과 보존, 예술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미술관이나 문화공간에 들어간 예술은 나름 전문가의 손길을 받으며 관리되지만 공공미술처럼 누구나 드나드는 장소에 노출된 창작물은 그 ‘누구나’의 관심과 상식에 따라 잘 관리될 수도,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에서 책임감 있게 공공미술 관리를 맡은 체계를 구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예산 투입을 통해 그 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조례를 통해 그 항구성을 보증해야 한다. 

부산과 제주의 사례는 아직 그러한 체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도 마찬가지이다. 작년에 낡은 신발을 모아서 탑을 쌓은 한 작업이 냄새와 흉물스러운 외관으로 질타를 받았는데 정작 작품 설치 과정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어 공공미술 전문가들이 논란의 여지를 사전에 점검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에 1976년 설치된 오펜하임의 작업, 도시의 자랑이 되었다. 출처 withart.visitphilly.com.jpg
▲ 미국 필라델피아에 1976년 설치된 올덴버그의 작업. 도시의 자랑이 됐다. 출처: withart.visitphilly.com.

외국은 어떨까?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예술위원회를 통해 1911년부터 도시미관과 공공미술, 기념비 등의 디자인, 설치, 구입, 기증, 제거, 이전 등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위원회는 2년마다 필라델피아의 공공미술 상태 보고서를 작성하며 기록으로 남기고 적절한 관리를 의뢰하기도 한다. 또한 필라델피아에는 ‘공공미술협회’가 있어서 도시에 설치된 공공미술 관리, 보존을 담당하며,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기존의 공공미술 자원을 활용한 투어를 진행하며, 조각 워크숍이나 사진 공모전과 같이 관심을 유도하고 시민의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국내에도 눈에 띄게 공공미술과 조형물이 확산되었다. 한때 조각가들이 그 확산의 붐 속에서 고수익을 올리기도 했고 브로커들이 등장하며 ‘조형물 산업’으로 변질되기도 했었다. 제주에도 벽화 그리기부터 낡은 건물에 예술을 입히는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공공미술이 우리의 주변을 찾아와 예술과 삶의 거리를 좁힌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만큼 미적 감각이나 미술을 보는 시각이 제도에 반영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도심 활성화에 예술을 동원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의 확대도 좋지만 그 문화를 가꾸고 후대에 물려주는 의무를 제도적 장치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길거리의 조형물이나 벤치 하나라도 의견을 수렴해서 도입하고 설치,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며, 지금 당장 이상하고 부실하게 보이더라도, 한번 보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치를 담은 흔적이라는 생각을 확산할 수 있는 교육과 홍보를 맡은 지속적인 관리주체가 필요한 때이다. 부산의 사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없는 행정 담당자가 그 도시에 오명을 입히기 전에.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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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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