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강정효...“가장 제주다운 탐라국입춘굿, 대표 콘텐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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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 ⓒ제주의소리
(사)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은 올해 1월로 정해진 2년 임기가 끝났다. 그러나 민예총 회원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 문화계 인사들이 강 이사장의 연임(2년)을 예상했다. 제주4.3 70주년, 탐라국입춘굿 20회 등 굵직한 사안들이 한창 속도를 내며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23일 제주민예총 사무실에서 만난 강 이사장은 “(연임이) 좋을 게 없다”며 오묘한 미소와 함께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앞서 설명했듯이 4.3 70주년 기념사업, 탐라국입춘굿 모두 제주민예총이 핵심적으로 참여하거나 진행하는 사업이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자리 잡기까지 사실상 실무적인 과정은 오롯이 제주민예총이 도맡아왔고, 탐라시대부터 맥을 이어오는 도심축제 탐라국입춘굿도 올해 20회를 맞아 몸집을 키웠다. 여기에 각종 신규 사업에 대내외적으로 입지를 차곡차곡 다져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강 이사장을) 자리에 계속 앉히느라 애썼다”는 어느 민예총 회원의 지나가는 푸념이 농담만은 아니겠다.
 
강 이사장은 탐라국입춘굿이 역사나 원도심(성내)이라는 입지 모두를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충분한 콘텐츠라며, 제주도민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는 새 프로그램으로 그 가능성을 점치는 첫 해다.
 
4.3 70주년 기념사업은 사건 당시 역사를 기억하는 세대들이 이번이 아니면 더이상 목소리를 남기기 힘든 만큼, 전국적으로 4.3을 알리는데 역량을 집중해 나간다는 포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의 공동 전시, 4.3분향소 전국 설치,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4.3문화제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여길 수 없는 행사들을 앞두고 있다. 특히, 제주4.3평화공원에 안치된 1만5000 위령들의 혼을 달래는 일주일간의 해원상생굿은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힐 만 하다.
 
강 이사장은 “우리(제주민예총)는 4.3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며 신중하면서 힘 있는 의지를 내세웠다. 다음은 강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Q. 이사장 연임을 축하한다. 4.3 70주년, 탐라국입춘굿 20회 등을 고려할 때 올해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A. 사실상 두 가지 모두 지난해부터 이미 시작됐다. 입춘굿은 지난해 행사가 끝나자마자 평가보고회·세미나, 준비위원회를 잇달아 개최·구성하고 9월 추경으로 20회 준비 사업까지 진행했다. 사실상 1년 전부터 준비한 셈이다. 4.3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그해 10월에야 사단법인으로 등록할 수 있었기에 기념사업위원회 이름으로 추경 예산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당부분 민예총이 받아서 진행했다. 최근 나온 4.3지도, 책자, 신문 같이 결과물이 나온 추모사업의 정산은 모두 민예총이 했다. 그러다보니 작년부터 일찌감치 바쁜 일정이 이어졌고, 사업의 연속성 차원에서 연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좋을 게 없다(웃음).
 
Q. 탐라국입춘굿부터 살펴보면, 지난해 역대 최고 관람객을 기록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고 올해는 행사 기간도 늘리고 시민참여프로그램 같은 행사도 더하면서 규모가 커진 인상을 받는다. 
 
A. 어떤 일이든 때가 있기 마련이다. 탐라국입춘굿은 지금이 행사를 업그레이드(Upgrade) 시키는 시기라고 본다. 제주목사가 직접 나선 예전 입춘굿처럼 행사 성격을 제주 전체로 넓혀야 한다는 내부 의견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지난해는 날씨 덕분인지 호응이 꽤나 좋았고, 주최 기관인 제주시와의 협력도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예산도 늘어나고 일찌감치 준비할 수 있었다
 
해를 넘기기 전부터 다음 해 입춘굿을 준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입춘굿이 열리면 제주의 모든 고을이 검은 소 한 마리씩을 잡고 도민 전체가 잔치를 벌였다. 이런 취지에 맞게 더 많은 도민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소원지·열명 걸기를 비롯해 올해 처음 시도한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그런 구상의 일환이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지난해 9월부터 신청을 받아 지역주민, 청소년, 어린이들과 교육 수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입춘굿 본 행사에 참여한다. 이런 경험이 점차 쌓이고 많아지면, 지켜보는 관객이 아닌 참여하는 일원으로서 만족도가 높아지리라 본다. 하나 사례를 들어보면, 재작년까지만 해도 입춘굿 말미에 하는 푸다시(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벌이는 무속 의례)는 나를 포함 몇 사람 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는 10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거다’ 싶었다. 지켜만 보는 사람들을 최대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굿 구경도 자유롭게 끼어드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나. 
 
Q. 탐라국입춘굿이 열린 햇수로는 20년이 넘는다. 큰 틀에서 달라진 건 없는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유독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해 입춘굿이 끝나고 SNS를 살펴보니. 어느 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사가 널리 전파됐더라.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는데, 사람들이 가장 제주적인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 것 같다. 제주다움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입춘굿 아니겠나. 지난해부터는 영어, 중국어 홍보자료도 만들었다. 얼마전 입춘굿 소식을 내 개인 SNS에 올리니 (입춘굿 보러)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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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고 관람객을 기록한 지난해 탐라국입춘굿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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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고 관람객을 기록한 지난해 탐라국입춘굿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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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 ⓒ제주의소리
Q. 4.3으로 넘어가자. 강 이사장은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4.3 70주년을 준비하는 위원회 전체 분위기는 어떤가?
 
A. 4.3 50주년, 60주년 행사도 진행했었는데, 70주년은 이런 정서가 깔려있다. 4.3을 기억하는 세대들은 사건 당시 7살에서 10살 내외였다. 그 사람들이 70년이 흐른 지금 80세 가까이 됐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오는 건 어쩌면 이제 마지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도내 104개 시민사회 단체와 200개가 넘는 단체들이 속한 4.3 범국민위원회가 공감하고 있다.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서 정치, 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과 시민의식 덕분인지 (세상이) 이제는 4.3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1947년 3월 1일 도민 3만명이 3.1절 기념대회에 모여 외쳤던 통일정부, 친일파 척결 같은 구호는 결국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자는 요구였다. 이건 촛불혁명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외쳤던 희망과 일맥상통한다. 확실히 예전 50, 60주년과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Q. 4.3 7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주목할 만한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A. 광화문 광장 문화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3 전시, 전국 4.3분향소를 꼽을 수 있겠다. 수만 개의 촛불이 켜졌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온 국민을 대상으로 4.3문화제를 연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함께 4.3아카이브 전시도 2달 동안 진행한다. 한국민예총 차원에서 전국 20개 도시에 4.3분향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문화정상회의 참석 차 제주를 찾은 캐서린 컬린(Ms. Catherine Cullen) 전 UCLG 문화분과위원회 위원장이 민예총 사무실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문화 예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어떤게 있냐”고 내게 물어 봤다. 그때 4.3문화예술축전을 이야기했다. 1994년 제주민예총이 창립할 때도 4.3을 세상에 드러내기 꺼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창립한 지 한 달 만에 4.3예술제를 열었고 지금까지 매해 열고 있다. 예술이 먼저 나서서 4.3을 이야기하자 어느덧 특별법과 국가추념식까지 오게 됐다. 이 자체로 문화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답이 된다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캐서린 컬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더라. 우리(제주민예총)는 4.3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다. 
 
Q. 제주에서는 어떤 4.3행사가 열리나
 
A. 4.3문화예술축전은 변함없이 제주에서 연다. 야외에서 공연했던 역사맞이 거리굿을 정식 무대에서 작품화하는 작업을 올해부터 시작한다. 뮤지컬과는 성격이나 형태가 다르겠지만 무대에 올리는 작품으로 압축해 선보이려 한다. 당장 2월 중순에 1946년 화순 탄광 사건을 다룬 뮤지컬 <화순> 초청 공연이 있다. 제주도문예회관 1·2 전시실도 한 달 동안 대관해 지금까지 나온 주요 4.3예술작품을 도민들에게 보여준다. 문화예술축전 공간은 제주시청 앞 도로가 아닌 문예회관 마당이 될 것이다. 4.3 학살 장소를 찾아가는 해원상생굿은 2002년부터 이어온 제주민예총의 핵심 사업이다. 올해는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손잡고 4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동안 4.3평화공원에서 진행한다. 그곳에 모셔진 1만 5000명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후손들이 불러줄 계획이다. 제주의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굿으로 해원해주려 한다. 주목받지 않았어도 4.3운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초청하는 자리도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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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3해원상생굿.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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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3 역사맞이 거리굿.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Q. 2018년은 이사장 개인에게도 특별한 해가 되겠다.
 
A. 아마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제일 바쁜 해가 되지 않을까. 지난해부터 대학 강의를 모두 접은 상태다. 올해는 더더욱 못한다. 개인 작업(사진)도 뒤로 미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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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 ⓒ제주의소리
Q. 최근 제주민예총 회원 수도 늘어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잘 나간다’는 평가가 있다. 동의하나?
 
A. 우리 사업들이 모두 야외에서 한다. 날씨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다행히 내가 이사장을 맡은 2년 동안 날씨가 계속 좋았다(웃음). 전임 이사장이 외연을 키웠다면 내가 할 일은 그것을 안착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력이 있다면 조금 더 나아가는 정도일텐데, 다행히 상당부분 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좋아졌다. 제주의 정체성이란 제주민예총 창립 정신은 계속 지키며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최근 늘어난 이주 예술가들과 같이 어우러지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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