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46) 찬장 아래서 쪽술 주웠노라고 자랑한다

* 살래 : ‘찬장(식기나 음식물을 넣어 두는 각구)’의 제주방언
* 쪽숟그락 : ‘쪽술(쪽박 모양으로 생긴 숟가락)’ 또는 ‘작은 숟가락’의 제주방언 
* 주시고랭 : ‘주웠다고, 주웠노라’고의 제주방언. 줏다‧주시다→줍다(습득하다)

곱씹어 보니 한 번의 ‘자랑’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판이다. ‘자랑, 자랑한다’라야 직성이 풀리게끔 된 성싶다.

가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찬장 아래서 숟가락 하나 주운 것,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가 말이다. 숟가락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쪽술 하나 주운 것을 갖고서. 참 싱겁고 시답잖다.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자랑, 자랑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사람 두셋만 모이면 자기 자랑에 열 올리는 어른들이 있다. 큰아들은 공무원으로 높은 자리에 있고, 작은아들은 서울 어느 기업에 부장이고 손주들은 S대학에 재학하고 있다, 자식에게서 매달 용돈을 얼마씩 받는다….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천성인지 습관인지 모를 일이로되 결코 좋은 매너가 못된다. 혹여 나이 든 분이 그런다면 온 정신이 아니거나, 치기(稚氣)가 발동한 사람이라 나무랄지도 모른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 그러니까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자랑함을 빗대는 말이다. 자찬(自讚)이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가 그린 그림에 스스로 자부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제 맘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보잘것없이 얘기하거나 혹여 자기도취에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 자기가 이룬 성취나 업적을 지나치게 자랑해 자기도취에 빠진 나머지 종국에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마저 합리화기에 이른다. 결국엔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하는 독단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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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장 아래서 숟가락 하나 주운 것,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가 말이다. 숟가락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쪽술 하나 주운 것을 갖고서. 참 싱겁고 시답잖다.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자랑, 자랑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사진은 지난 8월 공공기관 등에 배포된 박근혜 정부 정책백서.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발간사에서 "박근혜 정부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밝혔다. 사진=JTBC 뉴스룸 갈무리.

한데 자화자찬 본래의 뜻은 이와 다르다. 동양화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느라 덧붙인 글, 곧 감상하느라 쓰는 글이 자화자찬이다.

그러니까 예전엔 화공(畵工)을 불러 그림을 그린 뒤에, 그 그림의 여백에다 주인공을 기리는 글을 적는 게 관례였다. 

그걸 ‘찬(讚)이라 했다. 대개 인물을 칭송하고 논평하는 내용의 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게 그림의 주인공을 찬한 화상찬(畵像讚)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그린 자화상에 자기 스스로 ‘찬’을 지어 붙이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니, 그게 말 그대로 ‘자화자찬’이 된 것이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기가 칭찬하는 뜻하고는 조금 다르다. 거듭 말하거니와 ‘찬(讚)’은 문체의 하나이고 자기의 화상에 ‘자찬(自讚)’을 붙이는 일은 예전에는 특히 시화(詩畵)에 흔히 있던 일이다.

오늘날에 와서 이 말이 제가 제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듣기 싫어서 하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살래 아래서 쪽숟그락 주시고랭 자랑헌다’는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고 있되, 너무 정도에 지나치다. 자랑할 게 따로 있지, 부엌 안, 그것도 찬장 밑에 떨어져 있는 숟가락 하나 주운 게 도대체 대수인가 말이다. 행여 사람들에게는 동화 속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른다. 설령 자랑을 하더라도 그래도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이라야 입에 올리는 게 상식이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 뭔가 허황해 보이지 않는가.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나면 뭔가 허해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물며 자기 자랑의 말이란 게 남루처럼 얼마나 너저분한가. 말 가운데도 자랑의 말처럼 실없는 것이 있으랴. 

경우에 따라선 오랫동안 쌓아 놓은 미더움이 하루아침 새 무너지고 말 수도 있다. 부박(浮薄)해 보인다. 대인관계에서 그에 더할 손실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가령 자기 자랑을 하더라도 표 나지 않게 은근슬쩍 했다. 자랑이 자랑 아닌 듯, 자랑 같지 않게. 자화자찬하되 유치하지 않고 점잖았다. 자랑에도 엄연히 격(格)이 있었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문인이면서 화가인 강세황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위쪽 양옆 여백에 자찬(自讚)을 적었다. 

그 그림이 아주 우스꽝스럽다. 옷은 평상복을 입고 있으면서, 머리에는 관리들이 정복을 입을 때 쓰는 관모(官帽)를 쓰고 있다.

글의 내용인즉, “저 사람은 누구일까? 수염과 눈썹 온통 희다.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야복(野服)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이름은 조정에 있음을 나타낸 것일세. 가슴에는 많은 책이, 붓은 오악(五嶽)을 뒤흔든다네. 남들이야 어이알리. 나 홀로 즐긴다네. 내 나이 70인데, 호는 노죽(露竹)이니, 화상을 직접 그리고 찬(讚) 또한 직접 지었네”라 적었다.

자신이 지금 비록 벼슬길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마음은 늘 재야에 있음을 자부한 것이다. 아울러 가슴속 깊이 담긴 포부와 자신의 필력에 대한 자랑도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은근히 드러나 있다. 자기 자랑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품격이 있어 그런다. 원래 자화자찬이란 이런 것이다. 

살래 아래서 쪽숟그락 주시고랭 자랑 헌다. 그러다간 자칫 자기 자랑이 겉돌아 과장으로, 허무맹랑한 허언으로 흐를 우려가 왜 없으랴. 자랑해 버릇하다 보면 위선의 탈을 써 사람을 현혹케 할지도 모른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했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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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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