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길 시인이 제주평화봉사단(단장 강상철)에 참가해 2017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Uganda)에서 '평화의 씨앗 나누기' 활동을 벌였다. 이번 봉사활동은 지난 8월 20일부터 8월 30일까지 10박 11일에 걸쳐 쿠미(Kumi) 은예로(Nyero) 지역에서 12명 단원이 '쿠미와 제주, 하나 되는 평화 캠프'라는 주제로 활동했다. 제주특별자치도 평화대외협력과 주최, 제주평화봉사단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사업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t) 사업의 일환으로 전쟁과 재난․재해 발생국가,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제주 평화의 섬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구촌 평화 증진을 위한 실천사업이다. 우간다 쿠미에 ODA 사업을 통해 새 희망을 심고 평화 증진 활동을 함께 한 양영길 시인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양영길 시인의 우간다 이야기] (9) 전쟁 피해 가족들과 ‘세계가 하나 되는 밝은 날’ 기원

26일, 무크라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에 오델로 마켓을 들렀다. 전쟁 피해자 가족들에게 줄 염소를 사기 위함이었지만 우리 단원들은 이국의 낯선 장터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말 시장 오델로 마켓, 시장은 삶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었다.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모여드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단원들은 복잡한 틈새로 일행을 놓치지 않게 서로 조심하면서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넓은 들판에 발이 가는 곳마다 밟힐 듯이 진열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동채소로 알고 있는 양파, 양배추가 열대지방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제주 특산물 귤도 있었는데 껍질이 두껍고 색깔은 푸르등등했다. 맛은 신맛이 전혀 없었다. 감자, 고구마, 토마토, 수박은 물론 말린 물고기와 멸치도 있었다. 그리고 파피루스로 만든 발이나 깔개, 각종 옷가지와 천, 액세서리, 먹을거리도 있었다. 한 쪽에서는 재봉틀로 옷을 수선하거나 만들고 있었다. 

사진4-4.JPG
▲ 주말시장 풍경, 옷가지를 고르는 사람들.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사진4 (1).JPG
▲ 길거리 장터에서 귤을 팔고 있는 모습.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옷가지와 고메즈의 옷감은 색이 풍부해 걸어 놓은 것만으로도 오델로 마켓이 큰 무대 같았다. 밧줄을 길게 늘어놓고 파는 모습, 자전거에 칼갈이를 설치해 페달을 돌리며 칼 가는 모습 등이 이색적이었다. 

가축시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옹기그릇을 팔고 있었는데,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와 제주옹기 중간 정도의 열기로 구운 듯 보였다. 그 형태는 둥글둥글해 바로 세우기가 어려워 약간 땅에 심어 사용하게 만들어졌다. 가축시장에는 봉고차 지붕 위에 꽁꽁 묶여 있는 닭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고, 염소는 앞발 한쪽을 주인에게 잡혀 주인을 따라가느라 힘겹게 두 발로 걷기도 했다. 저 염소를 우리가 사서 전쟁 피해자 가족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소란하고 복잡한 장터였지만 삶의 의욕과 열기가 넘치는 우간다의 한 모습이었다. 

우리 봉사단은 무크라 추모공원을 나와 전쟁 피해 가족들이 모여 있다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염소의 ‘음메~ 음메~’ 소리가 학교 운동장을 메우고 있었는데, 피해 가족 대부분은 어르신과 어린이었다. 어르신 모두 여자였으며 대부분 전통복 고메즈를 입고 있었다. 오래 서 있기가 힘들어 앉아 있거나 나무 막대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 순진무구함 그대로였다. 

열다섯 가정을 추천받아 염소 두 마리씩 기증했는데, 이들은 염소의 앞 발 한쪽을 손잡듯 데리고 가기도 하고, 어린 염소는 품에 안고 가기도 했다. 한 손에는 염소의 손을 잡고 한 손은 우리 봉사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여기 함께한 어른과 어린이들의 삶이 더 강해지고 ‘세계가 하나 되는 밝은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사진2-3.jpg
▲ 전쟁 피해자 가족과 이들에게 기증할 염소.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사진3-2 (1).JPG
▲ 염소를 데리고 가는 모습.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벼의 모내기부터 성장 수확까지 한꺼번에 보이는 열대성 기후

우간다의 기후는 열대성으로 우기와 2개의 건기로 나뉜다. 건기의 끝자락으로 알고 왔는데, 현지에서는 우기의 한 가운데라고 했다. 우기인데도 가뭄기가 약간 있어 도로는 차나 오토바이가 지날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4~5월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 오지 않아 매우 힘들어, 모든 일에서 물 긷는 일이 우선이라고 했다. 기온은 낮 40℃ 아침저녁 28℃라고 했지만 우리 단원들이 활동하는 기간 동안 낮은 30℃ 안팎, 아침저녁은 22~23℃로 선선했다. 햇빛도 제주만큼 따갑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1년 내내 한여름 날씨인데, 다만 건기와 우기로 나뉠 뿐이다. 태풍도 없어서 농업에 적합한 자연환경이었다. 쿠미에서 음발레로 가는 길에서 습지대를 지나는데, 버스 편으로 10분 정도 이동 거리에서 모내기, 벼 타작, 이제 막 벼 이삭을 패는 모습 등 벼의 모내기에서부터 성장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많이 신기했다. 벼의 타작은 그냥 손으로 잡아 바닥에 내리치는 방식으로 타작했다. 

대부분 가족 단위 순수 인력으로만 소량 생산하는 농업이었으며, 저장 시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종자 개량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았다. 

쿠미 지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은 카사바, 고구마, 옥수수, 수수, 감자, 땅콩, 오렌지 등이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나와서 함께 했다. 땅을 팔 때 괭이 정도가 도구이며 거의 맨손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가축은 소, 염소, 양, 돼지, 닭, 칠면조 등이다. 염소나 양은 때로는 앞발 한 쪽을 손잡듯 잡고 가기도 한다. 닭은 자전거 짐받이나 차량의 지붕 위에 꽁꽁 묶여 있을 때가 많았다. 

사진2-2.JPG
▲ 전쟁피해자 가족들에게 염소 기증을 마치고. 사진=양영길. ⓒ제주의소리

옹고디아네 집에서의 식사는, 고구마 바나나 쌀밥 '자빠띠'가 나왔다. 그런데 고구마로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사바였다. 쌀밥은 차지고 맛이 있었다. 쿠미 지역에서는 쌀이 나지 않는데, 우리를 위해 특별히 구입한 것 같았다. 자빠띠는 제주의 빙떡처럼 다른 음식을 싸서 먹는데 빙떡보다 두께가 두꺼웠다. 

이제 쿠미를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웠다. 옹고디아네 가족들이 생각났다. 초가집 에또고이니야에서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던 글로리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릎을 꿇은 글로리아 
양영길


우간다 쿠미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옹고디아네 초가집 에또고이니야에서
이틀을 묵었다.

별들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 밤 
스무 살 글로리아가 
내게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한 손에는 대야를 
한 손에는 물을 들고

글로리아가 무릎을 꿇었다. 

나는 엉겁결에 일어나 
서지도 앉지도 못한 엉거주춤 자세로
손을 씻었다. 

나도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아 젖은 마당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핑계로 
카메라 하나 들고 

그들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낯설었는지 뜨아한 얼굴을 했다.
‘스마일’ 소리에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입술이 터지며
크게 웃었다. 
그 큰 입 다 벌리고 
하얀 이빨 다 드러내며 웃었다. 

글로리아는 더 활짝 웃었다. 


* 양영길 시인은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바람의 땅에 서서』, 『가랑이 사이로 굽어보는 세상』 등의 시집을 냈으며, 최근 청소년 시집 『궁금 바이러스』가 출판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