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22) 어떤 직유 / 장영춘

noname015.jpg
▲ 낙엽. ⓒ 김연미

낯빛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듯

단풍만 보고서도 올 한 해 바람을 알 듯

지는 해 하늘을 보면 떠난 이의 마음을 알 듯

고요한 마음속에 고요하게 밀물이 들 듯

하나가 되기 위해 나이 반쪽을 비워두듯

노랗게 물든 잎새가 내 발등을 적신다

-장영춘 <어떤직유> 전문

펜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자세히 보면 거친 선들이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것 같지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보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풍경이 보인다. ‘노랗게 물든 잎새가 내 발등을 적시는’ 그림 한 장. 그림 속에 거칠게 그려진 선 하나 선명하게 보인다. 그 선은 ‘낯빛만 봐도’ 알 수 있었던 ‘그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고, ‘올 한 해 바람’이기도 하고, ‘지는 해 하늘’이기도 하다. 이런 자잘한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서로 얽혀 그림 하나를 완성해 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다.

떨어진다는 것, 아래로 내린다는 것, 그것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만 넘을 수 있는 도약 같은 것이다.  노랗게 물이 들어야 낙엽이라는 도약대를 밟고 나무로부터 땅으로의 이동이 있을 수 있는 것인데, 노랗게 물이 들기 까지 지난했던 잎새의 시간을 우리는 ‘낯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단풍만 보고서도’, 라는 구절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듯이 말이다.
 
‘잎새’에 내포된 가을의 하향성. 그 하향성에 내포된 원초적 그리움과 고독이 여기서는 충분히 대비되어 있는 상태로 상정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내 발등을 적’시기 위해 낙엽은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거리를 살포시 덮은 낙엽들이 비에 젖어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어 할 일 다 끝낸 낙엽이 마지막 내린 자리에서 지구를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의 추위를 견디고 나면 봄이 예정된 자리다. / 김연미(시인)  

a1.jpg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