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70) 허영선 『해녀들』

▲ 허영선 『해녀들』 2017.

알았다

삶은 바다에서 건져올려지는 것

내 생은

바다 산 뒤에 숨은 폭풍 같은 것

(「해녀 홍석낭 2」 부분)

허영선의 시집 『해녀들』은 해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언어의 바다이다. 성난 파도가 바위를 거칠게 때리듯, 혹은 잔잔한 물결이 해변의 모래들을 간질이듯 높고 낮은 수없이 많은 목소리들의 축제가 이곳에서 벌어진다. 해녀들의 삶이 고스란히 이곳에 담겨 있다. 

허영선은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이 시들을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해녀들’의 한 사람으로 쓴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해녀들의 이야기, 해녀들의 한숨, 해녀들의 삶에 대한 끝없는 투지를 ‘받아쓴다’. 심방(무당)들이 신과 넋의 입술을 대신하는 것처럼, 그녀는 해녀들에게 시인의 입술을 선사하고 그녀 자신은 해녀가 된다. 바다에 드는 해녀와 언어의 심연에 드는 시인은 다르지 않다. 시인은 시집 뒤에 실린 「그들은 물에서 시를 쓴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파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시였다. 바다에 드는 순간부터 시였다. 그들은 물에서 시를 쓴다. 시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들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시였다. 나는 그들의 시를 받아 적는다. 그들은 물속의 시를 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온몸으로 사랑을 밀어넣으며 시를 쓴다. 그들은 물 밖의 삶과 물속의 생을 오가며 시를 적신다. (107면)

근래의 시인들이 개성적인 목소리로, 심지어는 탈개성적인 목소리의 개성으로 자신의 독창(獨唱/獨創)을 뽐내는 데 골몰할 때, 그녀는 기꺼이 해녀들의 목소리에 스며들어 그녀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진주처럼 채취한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허영선의 시집이 아니고 제주 해녀들의 시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바로 이 역설이 이 시집을 빛나게 한다.

『해녀들』은 말 그대로 ‘해녀들’의 이야기, ‘해녀들’의 노래다. 주의할 것은 한 사람의 ‘해녀’가 아니라 복수의 해녀‘들’이란 점이다. 시집의 제1부 ‘해녀전’에 실린 시들은 해녀 김옥련, 고차동, 정병춘, 덕화, 권연… 등의 생애사다. 그녀들의 이름에 앞서 놓인 말이 ‘해녀’라는 또 다른 이름이다. 해녀라는 것은 그녀들의 노동이 아니라 차라리 삶이었다는 말은, 정말로 옳다.

이 시집의 「추천의 글」은 『만인보』로 유명한 시인 고은이 썼다. 『만인보』가 역사적 인물로부터 장심이사들에 이르는 만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시집이라면, 허영선의 『해녀들』은 ‘해녀들의 만인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만인보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녀들은 제각각 지독하게 신산한 동시에 ‘거룩한 생애’(해녀의 삶을 그린 현기영의 단편소설 제목)를 살아왔다.

제주해녀항쟁과 4 ․ 3 시기의 역사적 고난이 그녀들의 삶을 집어 삼키려 했던 적도 있었고, 숨을 참고 바다로 드나드는 하루하루가 “물의 지옥”(「해녀 김옥련 2)이었다. 이를테면 4 ․ 3 시기에 「해녀 김승자」의 주인공은 아버지 대신 성 담을 쌓으러 갔다 돌더미에 깔렸고, 「해녀 오순아」의 주인공은 집단학살로 남편을 잃었다. 그녀들은 물질을 나가 숨을 참고 평생 고통과 상처를 참기도 한다. 

해녀들의 험한 물질 세월은 고향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바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아흔을 훌쩍 넘은 해녀들도 많고, 징용 물질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어려서 적적 / 늙어서도 적적” 평생을 홀로 물질하는 해녀들도 있었다. 

이 섬 저 섬,

굽이굽이 섬으로 돌아 와도

굽이치는 적적 그러니 살지

치바현 나 홀로

적적

아흔

(「해녀 홍석낭 1」 부분) 

굴곡진 삶의 드라마는 해녀들 저마다 세목들은 다를지언정 세상과 삶의 풍파를 견디며 숨비소리인듯 휘파람 소리인 듯 낮은 곳의 삶을 높은 데로 승화해온 것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 시들, 삶의 시들은 해녀들의 수난사이면서 해녀들이 쟁취한 영광의 기록이기도 하다. 

돌 속의 바람

물위의 바람 속에서도

기록하지 못한 씨앗이

눈물로 떨어져 다시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견뎌내고

오래 살아남아

(「해녀 강안자」 부분)

2부 ‘제주 해녀들’에 실린 시들의 제목에는 “우리들”이란 말이 많다. 해녀들의 삶 이야기에 바쳐졌던 1부에 비해 시인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한결 더 분명하게 내보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편들 역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해녀들의 목소리와 삶에서 길어 올린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시적 화자들은 자주 ‘우리’ 해녀들로서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밀어닥친 흉년에도 우린 몸으로 ᄆᆞᆷ을 했네

숨을 곳 없던 시절에도

아무런 밥 없던 시절에도

우린 몸을 산처럼 했네

ᄆᆞᆷ 삽서

ᄆᆞᆷ 삽서

우린 ᄆᆞᆷ을 팔았네

(「우린 몸을 산처럼 했네」 부분)

해녀들은 몸으로 일한다. 몸을 움직여 “몸을 베이는지” 모르게 몸을 쓴다. 그렇게 몸이 산이 되듯이 애써서 바다의 ᄆᆞᆷ(몸=모자반)을 산처럼 채취한다(“우린 몸을 산처럼 했네”). 그녀들이 바다에서 얻고 팔았던 몸(모자반)은 실은 그녀 자신들의 몸(肉身)이기도 했을 터. 그리하여 해녀들이 몸을 팔아 몸을 팔았다는 고백은 동음이의어의 말장난이 아니고 시적 진실의 영역에 속한다. “내 몸과 네 몸이 하나가 되어” 몸을 채취하고 팔던 게 ‘우리’ 해녀들의 몸에 새겨진 몸의 역사다. 

몸이 ᄆᆞᆷ을 먹다보면

저절로 몸꽃 피어나던,

성스러운

그 

한 사발

몸국

(「몸국 한 사발」 부분)

“바다의 식탁” 몸국 한 사발로 허기진 몸을 달랠 때마다 이제는 헤아릴 수 있겠다. 거기, 몸을 써서 자신들과 우리들 삶에 몸꽃을 피워 올리는 해녀들의 사랑이 있었음을.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부분)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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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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