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37) 한라산이 돈이라도 질빵이 없으면 못 지고, 바닷물이 팥죽이라 할지라도 숟가락 없이는 못 먹는다

* 어시민 : 없으면 (엇다, 읏다 ; 없다의 제주방언)
* 질빵 : 짐 지는 데 쓰는 줄, 멜빵
* 지곡 : 지고. 못 지곡(못 지고, 지지 못하고)
* 바당 : 바다의 제주방언, 바당물은 바닷물의 제주방언
* 팟죽 : 팥죽의 제주방언
* 수까락 : 숟가락, 숟깔의 제주방언 식 표기

꽃 한 그루를 심으려 해도 꽃삽이 있어야 한다. 손으로 할 수도 있으나 도구를 사용하면 그만큼 편리하다. 일상의 삶 속에 혹시 비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하고 있지 않나,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면 더 편리하지 않나. 꽃삽보다 훨씬 더 많은 흙을 빠른 시간 안에 퍼 낼 수 있고 또 당연히 결과도 좋고, 그런 도구의 효율적인 사용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려면 도구가 필요한 법. 목적한 바를 이루고 목표에 도달하려면 성취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이 따라야 한다. 일은 말로만 되지 않는다.

크든 작든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간다. 목적이란 실행하려는 일이나 나아갈 궁극의 방향이다.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 방법이 구름 잡는 꼴이 돼서는 안된다. 현실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문제나 요구에 뿌리박고 있어 인간의 생활 관계 자체의 객관적 인식 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리면 성취란 없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하고 다음으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심혈을 쏟는다, 각고면려(刻苦勉勵)한다 함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무릅써 가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정진한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고사 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되새긴다.

중국 북산에 우공(愚公)이라는 아흔다섯 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집 앞에는 넓이가 칠백 리, 만 길 높이나 되는 태행산과 왕옥산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 오가는 데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가족들에게 말한다.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저 산들을 옮겼으면 한다. 그러면 길이 넓어져 편리할 것이 아니냐?”

당연히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노인은 뜻을 굽히지 않고 가족을 설득했다. 마침내 우공과 아들, 손자가 지게에 흙을 지고 가 발해 바다에 버리기 시작해 꼭 일 년이 지났다. 지켜보던 이웃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자네 생전에 산이 없어지긴 할 겐가?”

“내 생전에 못하면 아들이 할 것이고, 아들이 못 다하면 손자가 하면 되지 않겠나? 산은 깎여 나가겠지만 더 불어나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는 길이 날 것이오. 허허.” 

우공 때문에 두 산의 산신령들이 골치가 아팠다. ‘이러다 진짜 산이 없어질 게 아닌가.’ 걱정하다 옥황상제를 찾아갔다.

“상제님, 제발 어리석은 저 우공을 좀 말려 주십시오.”

“허허, 그의 노력과 정성에 감동했다네. 나는 우공을 말리기보다 도와주려 하네. 두 산을 옮겨 주기로 했지. 허허.”

옥황상제는 힘센 거인들을 시켜 두 산을 번쩍 들어 옮겨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다 끝내 우공의 노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우공의 집에서 한수(漢水)까지 일직선도로가 났다. 그 후로, 쉬지 않고 노력해 일을 이루는 것을 일러 ‘우공이산’이라 해 온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임을 일깨워 주는 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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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10월, 신영복 교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글 '우공이산(愚公移山)' 출처=노무현사료관.

편리와 요령과 속도의 시대에 웬 세상물정 어두운 옛 노인네 타령이냐 할지 모르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능률이 떨어지고 좀 굼뜨고 지체되더라도 길을 걷는 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려는 성취동기요 목표의식이다. 그리고 끈질긴 실행이다.
  
어떻게 터널을 뚫는 대신 산을 옮기는지 하고 고민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목표를 향해 진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공이산, 비록 우직하지만 쉬지 않고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한라산이 돈이라도 질빵 엇이민 못 지곡, 바당물이 팟죽이라도 수까락 엇인 못 먹나.” 

맞는 말이다. 
  
‘한라산이 돈’이고 바닷물이 팥죽‘이라 할 만큼 조건이 좋으면 뭘 하나. 질 것은 짐 지고 먹을 것은 숟가락으로 떠야 내 것이 된다. 멜빵이 없으면 만들 것이요 숟가락이 없으면 구해야 한다 함이다.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 있으면 감이 저절로 입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도구와 수단과 방법을 찾으려 않고 주저앉아 한탄한다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삶의 주체는 자신이다. 손품이든 다리품이든 팔아야 답이 나온다. 일을 위해 길 위에 설 때, 우공이산 속의 옥황상제처럼 거들어 주는 손도 나오는 법이다.
  
꽃 한 그루를 심는데도 흙을 파야 한다. 손을 타는 게 힘들면 꽃삽을 구해야 한다. 치밀한 궁리와 치열한 탐색 속에 주어지는 게 효율이다. 따라서 그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는 탐스럽고도 달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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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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