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지정학적 이점에도 강대국들의 동네북 신세가 된 한반도

막말의 희생타

“북한과 미국 간에 전쟁이 나서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한반도에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미국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3주 전 북미(北美) 간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우리에겐 여전히 천사의 나라로 남아있는 미국. 하지만 수천 명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천사도 있는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남들 싸움에 내 집이 풍비박산이 날 지경인데도 볼멘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우리의 처지다. 얼마 전 일흔 두 번째 광복절을 기꺼이 맞이할 수 없었던 이유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함

전쟁놀이는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이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충격요법으로 써먹는 상투적 수법이라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일 것이다. 특히 러시아 스캔들로 사면초가에 빠진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는 무지막지한 ‘전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등 돌린 여론의 관심을 모으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지사다. 게다가 그동안 점수를 까먹는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던 그만의 특출한 막말 실력까지 곁들이니 약효가 만점이다.

남이야 어떻든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건 북한의 김정은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삼대로 이어져온 독재체제의 숨 막히는 통제에다 낙후된 경제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들끓는 불만의 소리가 연이은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 성공에 잦아들고 있는 것에 자신감을 가졌는지. 선대를 닮은 건 똥배에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뿐인 김정은이가 약관의 나이에 어엿한 국가수반에 올라앉은 몰염치도 잊은 채 이젠 트럼프의 막말에 ‘맞짱’까지 뜨려는 모습은 “굴러오는 수레를 멈추려 했던 그 옛날 장자(莊子) 이야기의 맹랑한 사마귀”도 울고 갈 정도다.

꽃놀이패와 독박패 

뻔한 승부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들의 막말싸움을 격투기를 구경하듯 한가한 관람객이 될 수 없다는 것. 이들이 우리 땅을 놓고 벌이는 불꽃놀이는 이들에게는 ‘꽃놀이패‘지만 우리에게는 ’독박패‘를 안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 업그레이드된 살상무기로 엄청난 인명 희생가능성은 미래의 일로 차치하고라도 지금도 환율폭등과 주가폭락, 그리고 금 사재기 등 전형적인 전쟁 시 현상을 이미 현실로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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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야당들과 보수 언론들의 강경 일변도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기승전 전쟁'이다. 지금처럼 사적인 이유로 분단과 대립을 즐기는 정치인들이 건재 하는 한 언제쯤 광복절다운 광복절은 요원하다. 출처=자유경제원 갤러리.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과 외국인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방도가 있을까.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의 승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전쟁만은 막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보수 야당들에게 모두의 힘을 보태야 할 국가적 사안이 아니라 물어뜯기 좋은 정쟁(政爭)의 먹잇감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안보에 관한한 특허라도 낸 듯 행세하는 그들에게 정작 이 난국을 타개할 대안은 있을까. 

'나씽(nothing)'이다. 

애국의 진실

“지금은 대화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 제재와 압박을 고강도로 높여야 할 상황”이라는 어느 야당대표의 주장이 책임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중대한 대북문제를 정파적 이익에 이용한 나머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없애고 대화채널까지 완전히 폐쇄한 마당에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게 구걸하면 모를까, 이제 우리에게 제재와 압박을 위해 동원될 수단으로 무엇이 더 남아있단 말일까. 보수 야당들과 보수 언론들의 강경 일변도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기승전 전쟁'이다. 

애국은 악당의 최후의 도피처란 말이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고 지금의 이슬람국가(IS)가 그렇다. 한반도가 현재의 전쟁 직전 분위기까지 이른 데는 역대 보수 정치인들이 선거 때나 정치적 궁지에 몰릴 때마다 걸핏하면 나팔수 언론들을 동원해 안보위기를 과장 선전함으로써 국민들만이 아니라 심지어 북한에게까지 불안 심리를 조장해 온 탓도 크다. 오죽해야 십여 년 전 대선 때는 북한에 총까지 쏘아달라고 부탁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일어날까. 공(公)을 사(私)로 챙기는 건 트럼프나 김정은이나 우리의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이나 ‘호형호제’다.  

계륵이 된 사드 배치 

극도의 한반도 긴장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과 미국의 물밑대화가 진행되는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정부의 대화 얘기만 나와도 벌떼처럼 달려들던 보수 야당들과 주류 언론들이 미국이 대화전략으로 일부 선회하는 것에는 꿀 먹은 벙어리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형학적 특성을 미국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로 인해 장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위기로 몰고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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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북한의 ICBM 발사실험으로 사드를 추가 배치하는 바람에 중국은 더욱 강력한 무역보복을 가할 태세다. 이제 사드의 성능과 환경영향을 검증하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사드를 배치하는 것도 배치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어느 경우든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보복이 날아올 수 있는 ‘동네북’ 처지다. 언제쯤 광복절다운 광복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적인 이유로 분단과 대립을 즐기는 정치인들이 건재 하는 한 요원한 일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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