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苦言) / 신부,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몇 달 전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다. 백성들의 거센 분노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져 조기대선을 치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도 벌써 80여일 지나고 있다. 그 사이에 정권 인수위원회를 꾸릴 새도 없이 숨 막히게 돌아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와 흐름들이 심상치 않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산적한 적폐청산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여기다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나마 역대 최고의 지지율은 다행이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백성들 가운데로 다가와 따뜻한 행보를 보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당장의 삼각 파고를 헤쳐나 갈 한 축을 확보한 셈이다. 앞길이 첩첩산중인 가운데 조심스레 낙관적인 전망을 기대해 보는 이유이다.  

탄핵된 전 정권은 반면교사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만 봐도 그렇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고귀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이다. 온 나라가 속울음을 흘리며 자책감과 비탄에 젖어 무기력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는 민심과 전혀 동떨어진 행태를 보였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적당히 덮고 넘기려는 데 안달했다. 점차 민심이 이반 조짐을 보였다. 그러자 조급한 탓인지 정권의 안위와 정치적 유불리를 내세워 지역과 세대, 이념과 정파로 백성을 쪼개놓기 시작했다. 갈수록 분열과 갈등은 첨예해 졌다. 그 후 3년 동안 국정 혼란과 실책이 이어졌다.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총체적 국정 난맥상에 빠져 버리고 만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의 막을 내리게 한 크나큰 실책을 범한 것이다. 예나지금이나 민의를 외면한 권력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반증인 것이다. 

이 시점에 새롭게 출범한 현 정부는 등 돌린 민심을 회복하는 게 최대과제다. 소위 이게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이루는 거다. 국정시스템의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까놓고 이러 저런 이유로 주변부로 내몰린 민초들을 국정의 중심에 두자는 거다. 그러려면 실제적으로 권력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약하고 힘든 이들과 애환을 나눠야 한다. 지난 광주민주화항쟁 5.18 기념식은 좋은 예다. 그 날의 감동은 생각할수록 벅차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과 5.18둥이 김소형 자매의 만남은 백미다. 한 자매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안고 위로하는 대통령의 행위야말로 백성을 온전히 국정의 중심에 두겠다는 강한 국정철학과 의지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최고의 통치행위이자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란 점에서 제대로 민심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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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제공=오마이뉴스.
    
그 날의 감동은 빠르게 전파됐다. 한 미국 교포는 트위터 계정에 “내 조국 대한민국이 참 자랑스럽다”고 썼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민의 고통을 보고 아파하고 울어주는 모습에 한없는 부러움을 느끼다 간간히 조국(祖國)에서 전해지는 불미스런 소식에 극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새 대통령의 신선한 행보를 접한 것이다. 너무도 기쁘고 설렌 끝에 외친 것이란다. 이는 비단 그만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재외동포가 같은 마음이요, 아마도 이 땅을 사는 대다수 민초들의 간절한 소회(素懷)일 것이다. 언필칭 그것은 지역과 세대, 이념과 정파의 두터운 경계를 허물어 이 나라를 하나로 엮어주는 동아줄이 될 게 분명할 터이다. 향후에 새로운 정부가 국정과제를 실현하는 데 있어 재삼재사 곱씹어 볼 대목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민심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주역은 뭐니 뭐니 해도 민초들인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역사이래로 권력은 그들에 의해서 나왔고, 실제적으로 그들은 나라의 주인이다. 그러기에 새 정부는 더욱 낮은 자세로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려 섬기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결코 이를 잊지 말자. 만일 이를 잊어 엇나가면,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처럼 민초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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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명심하자. 아무쪼록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말고 깨어 있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백성을 위한 국정을 펼쳐나가 성공한 정부가 되길 간곡히 바라고 싶다. 

아울러 제주를 사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4.3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약속한 바를 꼭 지켜주시고, 내년 70주년 추념식에 반드시 참석하여 부성(父性)으로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오랜 만에 그들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게 해주시길 기도드리고 싶다. / 고병수 신부,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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