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5) 수잔 레이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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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 레이시, 김인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이영욱 옮김, 문화과학사.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논의를 넘어 사회적 공공성 논의가 본격화한 지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미술계에서도 공공미술을 둘러싼 다차원의 담론과 실천이 이어졌다. 그것은 예술의 공공성을 다시 묻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사회의 공공성 자체에 관한 새로운 질문과 대답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미술의 공공성 논의가 본격화할 무렵에 이 책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는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1980년대 이래 한국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공공미술 개념과 제도를 미술의 내재적 논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재성찰하게 함으로써,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정치사회적인 비판주의 관점에서 공동체예술의 상호작용이나 행동주의예술의 참여와 개입 등의 관점으로 확장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미국의 1980년대 사회적 의제를 다룬 예술 실천은 한국의 1980년대에 나타는 정치,사회적인 맥락의 예술 흐름과도 그 맥락을 비교해볼만 하다는 점에서도 이 책이 정리한 새로운 예술공론장 논의는 매우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다.

근대 초기의 역사적 시점으로 소급해서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살펴보자면, 근대적 의미의 예술은 공공영역을 창출한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기를 지나면서 예술은 그 자체로서 의미와 맥락을 생성하는 자족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과정은 예술을 공공적인 것으로부터 사적인 것으로 퇴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공공미술(public art)라는 용어가 고안되었으니, 1960년대 서구의 문화혁명 시기였다. 엘리트그룹의 전유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포섭된 사적인 예술을 공론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환적 개념으로서 등장한 공공미술은 물리적 장소 기반의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라는 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공미술 관련 법제도에 갖히면서 박제화하는 결과를 낳기 시작했다. 공공미술에 관한 새로운 논의는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사적인 미술을 극복하겠다며 나타난 공공미술마저도 틀에 박힌 전형으로 굳어지던 시기에 등장했다.

공공미술은 미술의 역사와 함께 존재한 미술 창작과 매개와 소통에 관한 일체의 방식들 가운데서도 특히 근대적 예술개념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공공미술은 근대적 의미의 예술개념이 창안된 이래 지속되어온 모더니즘 예술의 폐쇄적인 창작과 매개, 소통의 방식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공장소에서의 미술, 공공적 의제를 다루는 미술, 공공기금으로 조성된 미술 등 다양한 형식과 태도를 가지고서 미술에 있어서의 공공성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공공의 요청으로 제작되어 사회적 맥락과 참여민주주의의 성격을 가지는 공공미술은 특정장소의 역사성과 특수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다. 포스트모더니티 논의는 모더니티의 체계적인 영역분할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탈분화 과정을 해명함으로써 미술의 실천적 영역과 창작 방식에 있어서 실재와 기표, 현실과 예술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의 미학화 개념이나 매체, 스타일, 장르의 해체와 중복 등 미술 영역의 확장과 다원주의적 양상은 미술의 탈제도화나 사회적 실천들과의 통합 등과 같은 유연성을 제공한다.

공공미술은 예술의 대사회적 자기정당화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다. 60년대 후반 이후 서구에서 진행된 공공예술(public art)의 실천적 전략들은 공공재로서의 가능성을 담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예술의 거처를 전시장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로 치부해왔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공공장소에서 공중과 만나는 예술적 장치로서의 공공예술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공공예술은 공공재로서의 실천적인 함의를 내포한 예술개념이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이라는 담론이 유포되기 이전에도 미술을 전시장에서 열리는 전시라는 틀에 한정하는 관행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제 미술은 전시장 안에서의 게임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열리는 전시가 미술의 언어 게임에 갇히면서 비평적 활기를 잃고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에 부응하면서 비평적 맥락을 상실하는 반면, 새로운 유형의 예술 실험들이 공공영역을 형성하면서 예술의 공공적 소통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동가로서의 예술가’의 지위는 새로운 양상의 공공미술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매우 시사적이다. 수잔 레이시에 따르면, 예술가의 행위 과정은 ‘경험, 분석, 보고, 행동’의 단계로 나눌 수 있으며, 공공적인 예술이란 ‘개인의 경험에 따른 주관성적 감성을 공감시키는 단계로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가 새로운 합의를 세워내는 과정’으로서 예술행위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공공미술의 함의를 살리기 위해 주목해야할 맥락은 오늘날 사회운동과 문화예술운동이 적극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영역(public sphere)에서의 예술적 실천은 공론장에서의 예술가의 지위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위의 분석에 따르면, 예술가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예술가이자, 예술가 집단의 조직가이며, 특정 상황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보고하는 이슈 파이터이자, 정치적 맥락을 잡아내는 사회적 퍼포먼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공공미술은 환경조형, 장식미술, 대지미술, 장소지정형 미술(Site Specific Art) 등을 포괄하는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새장르 공공미술 논의를 통해 새로운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 이 개념은 물건으로서의 작품을 남기는 것을 넘어 행위과정을 중요시하며 프로그램 운영으로까지 예술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공공미술의 출현은 행동주의 예술의 전략적 단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 건설, 사회적인 표현, 공공적인 안건을 만드는 새로운 미술가의 역할’ 등의 특성에서 드러나듯이, ‘주제의 문제나 장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활성화된 가치체계의 미학적 표현‘을 시도하는 참여적 성격이 강하다. 공공미술은 ’다양한 관객들과 삶의 이슈를 소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매체를 사용하는 시각예술‘을 의미하며, ’장소(site)의 역사적, 생태적, 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심으로 관객과의 관계설정을 모색하는‘ 미술행위이다. 따라서 공공미술론은 ’특정 공간 대상의 미술행위, 현실 개입의 실천적 경향성, 장소와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현장성 획득‘ 등에 있어서 현장미술과의 접합의 지점을 형성한다. 특히 새장르 공공미술 논의는 상호작용, 관객, 효과 등에 관한 논점을 제시함으로써 공공미술 논의의 확장적 양상을 해명하는 데 유익한 논점을 제시한다.

20세기까지의 공공미술이 물질형식을 빌어 영구적으로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건축물미술장식품과 같은 공공미술이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이라면, 21세기의 공공미술은 비물질적이며 비영구적인 공공미술을 포괄하는 새로운 형식과 태도의 공공미술을 새로운 공공미술이다. 이러한 구분은 기존의 건축물미술장식품 개념의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과는 차별화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과 같은 새로운 위치의 공공미술의 등장에서 출발한다. 전형적인 근대주의 미술을 포함해서 공공미술과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등 일련의 미술 개념과 제도는 심미적 오브제의 창작과 향유의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근대 초기 이래 수 백 년에 걸쳐 다양한 예술장의 변화발전 과정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책이 정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술공론장의 탈근대적인 흐름을 짚어보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미술사조의 탄생을 목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근본적인 사유의 씨앗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논의는 정치예술을 넘어 사회예술 논의를 촉발하는 관점의 전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예술이론의 정립에 중요한 이정표로 작동하고 있다. 근대주의 예술이 비판예술 역할에서 그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면, 탈근대주의 예술은 비판을 넘어 대안과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여 공동체와 공존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사회적 공론장으로서 재정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관장

▷ 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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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 예술학과 학부 및 석사 졸업 및 같은 학교 미술학과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과학연구소 대표 역임.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2014-2016), ‘프로젝트대전’ 총괄(2012,2014), ‘해인아트프로젝트 커미셔너’(2013) 등을 역임했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으로 공공미술과 사회예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과학예술과 우주예술을 연구 및 기획하고 있고, 올해 처음 열리는 ‘제주비엔날레’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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