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2동 소극장 '예술공간 오이' 건물 팔려 원도심 떠나야...“극 분야 신진단체 관심 절실”

7년 동안 제주시 원도심(성내)을 지킨 작은 극단이 건물 매각으로 원도심을 떠난다. 특별한 행정 지원 없이 오직 연극문화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 운영해오다 적지 않은 시설 투자비용만 고스란히 날리게 된 이 극단의 바람은 “연극 분야, 그리고 신진 예술단체를 위한 배려와 관심”이었다.

제주시 삼도2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극단 ‘예술공간 오이(이하 오이)’의 지하 소극장이 오는 8월말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지난 2011년 말, 예술단체로 등록한 오이는 7년째 원도심에서 한 자리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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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도2동 주민센터 맞은 편에 위치한 예술공간 오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2년 <관리인>을 시작으로 지난 7년간 연극 14편을 무대에 올렸다. 전체 작품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들이 만든 ‘창작 작품’이고, 그 중 2015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무려 10편을 제작하는 등 이제야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상황이기에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은 더욱 크다.

오이가 '셋방살이'하던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 이유는 건물이 매각됐기 때문. 새로운 건물주로 바뀌면서 용도가 바뀔 예정이다. 오이가 소극장과 함께 임대한 1층 카페는 내년 봄까지 임대기간이 남아 있지만, 핵심인 지하공연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선 부대시설인 1층 카페운영도 의미가 없어졌다.

오이 공동대표 오상운 씨는 처음 이곳에 들어온 2011년과 지금은 많은 점이 달라졌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유동인구가 적은 동네지만 처음 들어올 당시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어, 길 한 가운데서 주민들과 파티까지 했을 정도라고 한다. 2014년 제주시가 빈 점포를 예술인, 단체에 빌려주는 ‘문화예술의 거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다. 문화예술의 거리 추진 이전부터 일대에 자리 잡던 예술 단체는 '극단 오이', 그리고 '각 출판사' 둘 뿐이었으나, 이젠 이 중 하나가 떠나게 된 것이다.

오 대표는 “지하 소극장과 1층 공간 임대료는 지금도 비싼 편은 아니지만 처음 임대 당시와 비교하면 2배 정도 올랐다. 신기한 건 인근의 천주교 중앙성당 골목 공간 임대료는 거의 변동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 문화예술의 거리는 오르고 있다”며 착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거주·입주자가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오 대표는 건물이 사고 팔리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사유재산인 건물이고 소유주가 사정에 의해 건물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만든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생 예술 단체, 그 중에서도 '연극' 분야에 대한 공공 영역의 관심을 당부했다.

오 대표는 “오이는 제주특별자치도 또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 사업을 받지 않고 순수 창작물 연극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단원들이 극장 조명, 시설비용으로 투입한 금액만 약 6000만원 가까이 된다."며 "지금까지 제주에서 없던 형태의 극단이기에 자발적인 후원 회원이 80여명 모였고 응원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임대 공간 문제가 생기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특히 “이같은 임대공간의 불안전성은 순수 창작에 도전하는 극 예술가나 단체, 특히 신진 단체에게는 더욱 큰 문제다. 우리보다 더 신생 극단들이 이런 일을 당하면 과연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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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공간 오이의 공연 <사슬>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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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에 공연한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당시 관객들과 함께 찍은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더불어 “이번 일을 겪으면서 문화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실적이 있고, 경험이 많은 단체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제 막 시작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며 “무료로 공간을 내어달라는 게 아니라, 열정 하나로 문화예술에 뛰어든 신진 예술인들의 여건을 고려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신진 극단의 비애..."공적 지원 사실상 배제" 

오 대표의 이 같은 호소는 설득력이 있다. 지역에서 극 분야는 미술, 음악 등 다른 장르 못지 않게 열악한 여건이다. 최근 들어 공공(公共)이 조성하는 문화공간만 해도, 극 분야까지 미치진 못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최근 옛 제주대 병원을 리모델링해 마련한 '예술공간 이아'의 경우는 전시실, 레지던시(작업 공간) 등의 모두 미술 분야에 집중해 있다. 다만, 극·음악·무용까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이 생긴 건 환영할 일이다. 재단 2층 건물을 비워 청년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으로 제공한 사업도 애초 모집 대상을 회화, 사진 등 시각 예술로 한정지었다.

공연예술 단체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제주도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 역시 비슷한 사정. 올해 선정된 상주단체는 극단 가람(설문대여성문화센터), 하나아트, 모던 아트(이하 김정문화회관) 셋인데, 극 분야는 가람 하나뿐이다. 가람이 제주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임을 고려하면, 신진 극단은 사실상 공적 지원을 받는 길이 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6 제주문예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제주에서 열린 연극 공연은 149편이다. 이 가운데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이 24편, 예술의전당 18편, 세이레아트센터 10편,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9편, 설문대여성문화센터 8편,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 6편 등이다.

이중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가 메가박스 제주점으로 바뀐 점, 대형 공연 중심인 문예회관 대극장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특정 공연장에 대한 쏠림,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제주 연극판에서 역사가 오래된 세이레아트센터마저 공연 소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니, 극 분야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과장이 아닌 셈이다. 문화예술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2015년 창단한 극단 '그녀들의 AM'의 단원 장혜진 씨는 "연습실, 공연장 모두 녹록치 않다. 연습실은 단원이 운영하는 개인 학원에서 진행한다. 문예회관 소극장은 빡빡한 일정에 대관하기 쉽지 않다. 오직 연극이 좋으니까 모든 수고를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들의 AM은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동아리에서 독립한 극단이다.

장 씨는 "재단이나 제주도의 지원 사업 기준을 보면 신생 극단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아니다. 마치 '살아남는지 한 번 보자'는 식의 기분이 든다"고 빗대어 표현했다.

오이는 계속 진행하던 작품 <소통>과 함께 앵콜 공연을 몇 편 선보이고 8월 말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오 대표는 “극장 마룻바닥에 동백기름을 바르던 초심을 떠올리며, 예술이 없는 새로운 지역·공간을 찾고 있다. 지속적인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극단 오이의 안정적인 공연 공간 임대에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여운을 남겼다.

▲ 삼도2동에 위치한 연극 공연장 예술공간 오이. 8월 말이면 더 이상 연극이 열리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문의: 예술공간 오이 064-752-0246, www.art5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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