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㊽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생활공동체를 꿈꾸다

선교 여행은 타국이나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필자는 2017년 6월 5일부터 9일까지 제주화북교회(담임목사 강은철) 필리핀 선교팀의 일원으로 장도에 올랐다.

떠나기 전에 우리는 필리핀은 지금 계엄령 선포로 아주 위험한 지역이라고 들었다. 허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은 ‘민다나오섬’이다.

# 민다나오는 지금 계엄령 선포 중

필리핀은 도서국가로 7000여개 섬(유인도는 880개)으로 구성되지만 크게 3개의 군도(群島)로 나뉘어지는데 북쪽의 두손(수도, 마닐라가 있다), 남쪽의 민다나오, 그 중간에 바자야가 있다. 민다나오섬에 지금 계엄령이 발동 중이다. 

주민 대부분이 무슬림인 이곳은 원래 이슬람 자치구역이었다. 최근 IS간부가 시리아를 떠나 이곳에 잠입했다. 정부군이 그를 체포하려 했으나 이슬람 반군은 이동 등 인질 250명을 잡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열 받아서(?)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민다나오 시장 재직 시 마약사범 5000명을 처형하고, 집권 후에도 7500명을 처형한 ‘스트롱 맨’ 두테르테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다. 매우 기이하고 잔인한 독재자다.

# 두마게티에서의 망고 파티

여행 첫날, 우리는 인천공항을 겅유해 필리핀 세부공항에 도착했다. 세부에서 다시 밤 비행기를 타고 두마게티로 이동했다. 두마게티는 비자야 군도 안에 있는 네그로스 섬의 주도시로 도청 청사가 있다. 세부도 역시 비자야 군도에 속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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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화북교회 필리핀 선교팀은 6월 5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선교 활동을 가졌다. 제공=제주화북교회. ⓒ제주의소리

두마게티는 한국에서 파견된 천세동, 김정대 두 선교사가 시무하는 곳이다. 천세동 선교사 집에서 망고 파티가 열렸는데 난생 처음으로 망고를 배 터지게 먹었다. 과거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를 여행할 때도 망고를 먹은 적이 있지만 이처럼 맛있게, 거하게 먹지 못했다.

파인애플도 함께 나왔지만 망고에 주로 손이 갔다. 그래서 나는 일(1) 망고, 이(2) 파인애플이라고 주장했다. 망고는 수많은 열대 과일의 제왕임에 틀림없다.

# 제자교회 방문: 어린이는 교회의 희망

오후에 우리는 천세동 선교사가 시무하는 제자교회를 방문해 예배를 드렸다. 강은철 목사의 설교 후에 선교팀(윤문선, 강복희, 오복자, 이영숙, 성순심, 김복자)의 특송이 끝나자 현지 청소년들의 찬송가가 작은 예배당 안에 울려 퍼졌다.

초대교회 때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셨던 성령님이 지금 이곳에 계신다고 나는 믿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배가 끝난 후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자그마한 돼지 한 마리를 잡고 우리 일행과 60여명 교인이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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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화북교회 필리핀 선교팀은 6월 5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선교 활동을 가졌다. 제공=제주화북교회. ⓒ제주의소리

아이들이 이 천막교회의 희망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교회의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될 테니까. 모든 어린이는 한 가정, 한 교회, 한 사회의 기쁨이요, 소망이다. 선교사 사모(부인)는 교회 이름을 ‘제자교회’라 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곧, 성직자)를 길러내는 게 교회 설립의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오욕의 땅에서 순결한 제자를 양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여학생의 임신으로 좌절된 제자 양성

제자교회에 다니는 예쁘장하고 착한 15살의 J는 하이스쿨(고교과정) 졸업 후, 신학대학으로 진학해 전도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J가 그만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 ‘벌레 먹은 장미’가 성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사모는 필리핀 소녀들의 성적 타락의 요인은 오토바이에 있다고 했다. 오토바이에서의 신체적 접촉이 또 다른 신체적 결합의 도화선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학생들에게 제발 뒷자리에 여학생을 태우지 말라고 애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오토바이가 유죄일까?

한국 남자들이 세부섬을 많이 찾는 이유는 3가지라고 한다. 골프, 술, 섹스인데 다 값이 저렴하다. 서양 남자(특히 미국)들이 노후에 필리핀을 찾는 이유도 비슷한데 ➀물가 저렴 ➁소통(영어) 가능 ➂현지처 구하기가 쉽다. 

여기서는 70대 서양 노인이 20대 필리핀 처녀와 동거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녀 입장에서는 자기 하나 희생하면 전 식구가 먹고 사니까 나쁜 일도 아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도박, 술, 마약에 탐닉하는 자가 많고 문맹률이 높은데 보통 4~7명의 자녀를 낳는다고 한다.

더우니까 노출이 심하고 정조관념도 희박하고… 개방된 성문화가 필리핀을 유흥과 쾌락의 섬으로 만드는 토양이 아닐까?

# 싸방교회 방문: 융합과 통섭의 열린 교회

다음 날, 우리는 김정대 선교사가 시무하는 싸방교회를 방문했다. 2000평의 너른 잔디밭에 대나무 집을 지었고 교회 주변에 푸른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으며 오리, 닭, 개들이 뛰놀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그리던 전원교회가 아니던가? 

더욱이 선교사의 현명한 사모는 교인들에게 요리 등 살림살이를 가르치고 교인들이 자력으로 대나무 집을 짓도록 이끌었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공동체는 신앙공동체와 생활공동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교인들간에 사랑과 배려를 나누는 신앙공동체, 주민들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생활공동체가 실현되는 현장이 교회이다.

이처럼 상호교류, 쌍방향의 소통과 협력이 이뤄지면 그 교회는 예배·놀이·학습·봉사의 공동체요, 실천장이 된다. 나는 이런 교회공동체의 씨앗을 싸방교회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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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화북교회 필리핀 선교팀은 6월 5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선교 활동을 가졌다. 제공=제주화북교회. ⓒ제주의소리

한편 이 날, 강은철 목사는 바자회 수익금과 선교 후원금을 김정대, 천세동 선교사에게 전달했고, 오승홍 장로, 강복희 권사 부부는 개인적으로 두 선교사에게 헌금해서 박수를 받았다.

# 선교사는 누구인가?

선교사는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기독교의 불모지(외국)에 파견된 사역자다. 필리핀의 종교는 카톨릭이 대다수(90%)이고, 개신교는 소수(10%)이다. 그래서 개신교의 전도가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의 다름은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일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는 낯선 타국에서 빈곤·풍토병·외로움에 시달리고 때로는 박해와 배척, 멸시와 천대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사는 견고한 신앙심, 교회공동체(교인, 지역주민)에 대한 사랑·헌신·봉사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사역이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숨진 ‘남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의 사례를 보라.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란시스 치솜 신부가 중국 대륙에서 겪은 30년간의 선교史가 펼쳐지는 장대한 드라마다. 무지한 원주민의 생활과 페스트, 홍수 등을 이겨내는 치솜 신부의 불꽃같은 열정과 사랑, 교리를 뛰어넘는 확고한 신앙관이 독자를 감동시킨다. 노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치솜 신부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하나님 앞으로 올리겠습니다.” 모든 선교사는 평범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인간이다.

#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두마게티에서 선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선박편으로 다시 세부로 돌아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장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작년 성지순례 길에 들렀던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리조트다. 해변에는 맨드라미, 해당화가 피었고 에메랄드 빛 바다 위로 물새들이 떼지어 날아갔다. 필리핀에는 산호초와 백사장이 눈부신 해변이 많이 있는데 ‘보라카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보라카이라고 생각하기로 해다. 일체유심조가 아니던가.

일행은 여독을 풀기 위해 현지인 안마사로부터 마사지를 받았는데,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받은 마사지 중 최고였다. 누구는 어깨가 풀렸고, 누구는 손 저림이 나아졌다고 칭찬한다. 이 노련한 안마사는 경혈을 정확히 짚어가며 지압으로 온몸을 나른하게 하는 마법을 보여줬다. 이 무슨 호사인가 싶지만 이것도 다 주님의 은총이라고 여겨진다.

# 야베스의 기도

6월 9일, 드디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외국이나 육지 나들이에서 제주로 돌아올 때마다 발하는 감탄사는 이거다. “역시 내 고향 제주도는 천국이로구나!” 제주의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투명한 하늘과 바다는 신의 선물이요, 자연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다. 젊었을 때는 이 섬이 감옥이었지만 지금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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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성경을 읽다가 ‘야베스의 기도’를 알게 됐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나의 지경을 넓히신다’는 말을, 나는 장차 하나님이 화북교회가 후원하는 제2의 선교지, 우크라이나에 보내주시고, 또 내가 30년 동안 후원해온 아프리카 어린이들과도 만나게 해주시나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꿈꾸는 자가 언젠가 꿈을 이룰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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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화북교회 필리핀 선교팀은 6월 5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선교 활동을 가졌다. 제공=제주화북교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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