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4.3 70주년 D-1년] (6) 청년 예술가들이 말하는 4.3예술 “본질 지키되 형식 고집 탈피해야”

제주4.3 70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 나이로 치면 노인으로 비유할 세월이다. 4.3예술은 1978년 소설 《순이삼촌》을 시작으로 볼 때 올해 39년이 됐다. ‘야만의 시대’ 속 4.3 예술운동에 투신했던 많은 예술인들은 어느새 중년 이상의 나이가 됐다. 많은 국가폭력, 민주화운동이 그러하듯 4.3도 망각에 맞선 기억투쟁이 중요한 과제다. 달라진 시대 분위기 속에 4.3예술은 과연 어느 위치에 있을까? 

<제주의소리>는 4.3 69주년을 맞아 4월 28일 청년 예술가 6명과 함께 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문학, 음악, 영상, 미술, 사진 등 각자의 위치에서 4.3을 기억하는 예술가들이다. 선배들과 비교하면 스스로를 한 없이 낮게 여길 수 있겠지만 그들이 내딛는 한 걸음이 모여 4.3예술의 현재가 된다. 4.3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이들과 이야기했다. 사회통념상 청년 개념에 맞게 연령은 40대를 마지노선으로 삼았다.

# 참석자

현택훈(44)
2007년 <시와정신> 등단 
시집 《지구레코드》, 《남방큰돌고래》 
지용신인문학상, 4․3평화문학상 수상

김동현(45)
2013년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 식민지로서의 ‘제주’> 문학박사 학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겸 문학평론가

강경환(38) 
2009년 ‘사회주의 밴드’로 데뷔
2013년 정규 1집 <사우스카니발> 발표 
2014년 4.3 헌정 앨범 <산, 들, 바다의 노래> 참여 
EBS 헬로루키 선정,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 초대

양정환(44)
2004년 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 편집감독
2017년 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 연출

김산(29)
2014년 제주대 미술학부 졸업
2016~2017년 제주4.3평화재단 4.3기획전 참여

양동규(40)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사진·영상), 제주민예총 사무처장
탐미협 정기전, 4.3미술제, 강정 기록전 등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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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는 4월 28일 문학, 음악, 영상, 미술, 사진 등 청년 예술가 6명과 제주4.3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 근황

한형진 <제주의소리> 문화부 기자
바쁘신데 어려운 자리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양동규
제주민예총 4.3 69주년 행사를 마무리했다. 동시에 내년 70주년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모으고 있다. 평소 청년 예술인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현택훈
4월 1일부터 제주시 아라동(인다 13길 45-4)에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독립서점을 하고 싶어 결심했다. 이 달의 시집을 정하고 있는데, 4월은 김경훈 시인이 2003년 쓴 《고운 아이 다 죽고》로 정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 권 팔렸다.

김동현
글 쓰고 책 읽는 일이 주업인데, 여러모로 잘되는 것 같진 않다. 제주 소식을 전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제목은 <제주 소도리팡>인데,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구독 부탁드린다. 저 빼고 모두 예술 창작자분들인데, 오늘은 비평하는 사람 입장에서 함께 하겠다. 

양정환
다큐멘터리 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에 이어 단편 독립영화 <4월 이야기>를 제작 중이다. 개봉 예정 시기는 내년으로 보고 있다. 5월 20일에는 배·보상 문제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제주4.3희생자 유족회와 동행한다. 이 과정도 촬영하면서 별개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여기 모이신 분들에 비해 4.3을 잘 모르는 편에 속하지만 영화, 방송을 만드는 제작자 입장에서 나름대로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잘 부탁드린다.

김산
5월 1일부터 제주문예회관 전시실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전시 준비를 이제 막 끝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긴장된다. 나이도 여기서 가장 어리다. 저 역시 4.3은 잘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면서 작품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해, 올해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4.3기획전에 참여했다.

강경환
그동안 제주와 관련된 싱글, EP앨범을 꾸준히 발표해 왔는데, 정규 2집을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2집 수록곡은 이미 다 만들었는데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공연 무대에서 하나 둘 소개하다 보면 예전 곡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다. 매해 곡을 쓰면서 감성이 고갈된다는 느낌을 받는데 서핑, 오토바이 같은 음악 이외에 다른 것도 관심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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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양동규, 강경환, 김산, 양정환, 현택훈, 김동현.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 1년 앞으로 다가온 4.3 70주년

한형진
4.3 70주년을 1년 앞두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를 포함해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각자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양동규
올해는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과 내년 70주년에 초점을 맞춰서 4.3 행사를 치렀다. 과거보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참여도 많아졌다고 본다. 그렇지만 4년째 제주민예총 사무처장을 하면서 여러 고민이 쌓여간다. 어떻게 하면 4.3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지 고민이다. 4.3이 단순히 1948년 4월 3일부터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그 전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3 행사를 준비하는데 한계는 늘 있는 것 같다. 제주민예총이 4.3만 하는 단체라고 여기는 확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청년들의 참여나 4.3 예술 창작이 한계점에 왔다는 느낌도 있다. 민예총에서도 창작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전에는 새로운 공연이나 행사로 4.3을 알리는데 앞장섰던 기억이 있다. 4.3미술제도 평화나 인권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오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창작물을 지속해서 생산하는 게 쉽지 않지만, 지금은 창작이 멈춰 있는 시기가 아닌지 고민이다. 70주년을 계기로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산
주변에 선배 작가들이 활동하는 소식을 들어보면 재작년, 작년보다 4.3 작업에 대해 참여도가 높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4.3은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사건, 폭동, 항쟁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제각각이다.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4.3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예술 역시 이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 문제는 역사의 올바른 평가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4.3을 둘러싼 이념문제 때문에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본다. 내년 70주년은 4.3의 바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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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훈 시인.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현택훈
모두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69년이나 흘렀는데 여전히 4.3에 대한 완성적인 느낌이 아닌 미해결 혹은 해결 과제가 남은 느낌이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은 말할 수 없던 시간에 문학이 말을 한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 그동안 4.3문학은 증언으로서의 문학이 이어져 온 것이 큰 흐름 중 하나다. 4.3연구자들이 연구를 하듯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4.3의 입이 돼 말해왔다. 그런데 4.3을 증언해줄 사람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세대가 어떻게 4.3문학을 이어갈지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동현
문학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4.3문학작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소설 분야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다행히 김석범 선생의 《화산도》 전권이 번역 출판돼, 다양한 시각에서 4.3을 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3명이 모여 《화산도》를 다룬 책을 낸다. 5월 중에 나올 예정이다. 소설은 여러 면에서 토대가 되는 장르인데, 선배들이나 저를 포함한 중간 세대가 후배들을 더욱 지원하고 키워내지 못한 책임이 있지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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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환 감독.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양정환
일본 오사카에서 <오사카에서 온 편지> 시사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4월 2~3일 중앙 뉴스를 확인해봤는데, 4.3 관련한 뉴스가 딱 하나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소식이었다. 4.3을 이야기 한 게 아니라 안철수가 추념식에 참석했다는 거다. 제주에서는 언론사 마다 4.3을 특집으로 소개하면서 난리가 났다. 이걸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이 들었다. 섬 안에서는 시끌벅적한데 이게 제주만의 이야기로 머무는 게 아닌지 안타까웠다.

강경환
음악은 올해 4.3과 관련해서 크게 느끼지 못한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69주년이고 조기 대선도 함께 겹치면서 이슈화되는 것 같기는 하다. 이야기를 더해보면 예술가들이 절실함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사람들에게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본다. 현기영 선생님 시대는 4.3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해 쉬쉬하고 말하기 꺼리고 덮어두는 시대였다면, 1987년 6월 항쟁을 거친 386세대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시대였다. 그럼 2017년 지금은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의 시대라고 본다. 가슴이 뜨거운 분들의 경륜과 참여 예술도 의미가 있지만, 이 시대는 감수성이 요구되는 따뜻한 감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4.3에 관심을 가진 어느 음악 예술가가 모든 가사를 학살로 채워 발표한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이 시대의 감수성을 녹여낸 작품이 나온다면, 4.3을 모르거나 관심 없는 외부 사람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다. 4.3 작품이 왜 더 이상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은 이런 배경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제주민예총이나 단체, 모임에서 예술가에게 4.3을 정확하게 알리는 워크숍이든 교육이든 기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들이 어떻게 4.3을 표현할지는 자유다. 

양동규 
방금 말한 게 제주민예총이 2014년에 했던 4.3 기획 행사다. 사우스카니발을 포함한 제주, 서울 음악인들이 모인 워크숍을 열고 4.3창작곡을 만들어 달라 요청했다. 요즘 유행에 맞는 곡으로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때 탄생한 노래 중의 하나가 사우스카니발의 <만세(해방의 노래)>다. 이 곡은 4.3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에서도 나올 만큼 히트(Hit)했다.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지면 확산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한번으로 끝나 아쉽다.

# 4.3에 대한 새로운 요구...예술은?

한형진
자연스럽게 주제가 넘어갔다. 최근 들어서 4.3은 진상규명, 화해·상생에 그치지 않고 배·보상 문제, 미국의 책임 여부 등 진전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전국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세대 전승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4.3예술은 이런 목소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까.

양동규
‘솔직히 70년이나 지났는데 왜 작품을 만들고 예술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든다. 4.3예술을 지금 정도 했으면 진짜 많이 했다고 본다. 하나의 역사를 주제로 이렇게 이어온 사례가 전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이제는 뭘 가지고 창작을 더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다.
근데 한 편으로 4.3은 여전히 미완의 역사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보면 5.18 기념관이 만들어지면서 광주비엔날레가 미술로 5.18을 담아내서 관심을 받았고, 이후 대중성 있는 영화로도 제작돼 전국에 개봉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4.3은 그에 비해 많은 면이 부족하다.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는 4.3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화집이자 소개 자료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4.3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백비가 아직 누워 있지 않나. 사회적으로 확산도 시키지 못했고, 그렇다고 진실을 끌어올리거나 제대로 정립도 안됐고,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로 한번 이슈화가 됐지만 4.3으로 터트릴 만한 예술적 활동도 부족하다. 이런 찝찝함이 남아 있어서 계속 4.3예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도는게 아닐까. 그래서 70주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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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환 사우스카니발 리더.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강경환
2014년에 해녀 헌정 앨범을 낸 적이 있다. 외할머니가 서귀포시 법환 해녀이시기도 하고, 나름 잘 만들려고 고심했다. 연예인 하하까지 섭외해 안되는 제주어도 시키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앨범이 나오고 나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제주에서 해녀 관련한 권위적인 단체에게 “왜 검수도 안 받고 마음대로 해녀 앨범을 내느냐”고 한 마디 들었다. 행여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안된다는 취지에서 지적하긴 했지만, 그 계기가 나에게는 두려움으로 계속 남아있다. 이걸 꺼낸 이유는, 4.3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길 바란다면 ‘4.3 예술은 이렇게 해야 해’, ‘이런 식으로 해야 옳다’는 주장은 탈피해야 한다고 본다. 4.3을 체험한 세대, 그 뒤로 4.3을 예술로 알리기 시작한 세대를 지나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지금을 사는 청소년, 청년들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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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현 문학평론가.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김동현
우리는 4.3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다. 그렇다면 미술, 문학, 영상 모두 ‘우리에게 4.3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조해진 작가가 올해 2월 펴낸 소설 《빛의 호위》를 소개하고 싶다. 이 작품은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1967년 동백림 사건을 다루면서, 지금 우리 세대 시각에서 그 역사적 사건들이 무엇인지 바라본다. 모든 예술 장르가 시각을 변화하지 않는다면 4.3예술은 계속 과거의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다.

김산
대학교 4학년 때 지역방송사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난 4.3과 관련해서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전화가 왔는데 흔히 말하는 ‘수구세력’ 같은 사람들이 ‘니가 4.3에 대해 뭘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번호를 알고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제법 충격을 받아서 ‘4.3 작품을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저는 주로 제주 역사, 문화를 작품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4.3과 관련한 것은 반드시 집어넣으려고 한다. 저 나름대로 4.3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내 그림 하나가 어떤 힘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라도 4.3을 알리자는 심정으로 작업을 한다. 작가들의 노력과 함께 배·보상 문제 같은 역사적 해결이 하나씩 이뤄진다면 예술도 자연스럽게 발전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택훈
일본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서 그러는 면도 있겠지만 메도루마 슌, 마타요시 에이키 등의 문학 작품을 보면 미국에 대한 책임을 계속 묻고 있다. 우리는 4.3문학에서 미국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학이 나오면 좋겠다.

양정환
내가 보기에 어쩌면 4.3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예견된 사건이다. 시발점이 관덕정에서 벌어진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이라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간의 갈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에서 보다 깊이 살펴본다면 4.3에 대한 결론이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까.

# 70주년, 그 이후의 4.3예술

한형진
미완의 역사에 대응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흐름도 놓쳐서는 안 될 과제가 놓인 것 같다. 끝으로 70주년 이후 4.3예술을 위한 각자의 생각을 듣고 싶다. 특히 각 분야별로 가지고 있는 여건과 가능성이 다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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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 미술 작가.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김산
올해 4.3평화재단 미술제에 4.3 유족인 친척 한 분을 초청했다. 전시장에 오셔서 대충 보시더니 그만 보겠다고 나가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너무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선배 예술가분들이 4.3을 표현하는 작품을 보면 학살, 죽음을 많이 다뤘다. 주관적으로 4.3미술은 슬픔 뿐만 아니라 승화 과정까지 표현하는 비극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선배들이 노력했던 작품을 뛰어넘어, 젊은 세대가 4.3을 새롭게 바라보며 각자가 느끼는 대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형식을 고집하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젊은 작가들의 참여는 힘들 수밖에 없다. 또래 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4.3을 꺼내면 ‘강요배가 다 했는데 내가 왜 하냐’라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나온다. 무겁지만 무겁지만은 않게, 예술가들의 표현 방식대로 4.3을 세상에 보여주면 어떨까.
  
현택훈
전국화, 세계화라는 4.3의 과제는 예술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포장되는 상품 같은 전국화, 세계화는 경계하면서 연대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시야를 넓히면 베트남, 오키나와, 대만처럼 현대사의 아픔이 도처에 있기에 4.3은 우리만의 아픔이 아니게 된다. 제주작가회의 계간지 《제주작가》에 ‘공감과 연대’라는 코너가 있는데 베트남,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제3세계 여러 나라 문학 작품을 실으면서 연대를 모색 중이다. 이런 점에서 젊은 시인들은 4.3시를 쓸 때 답습에 그치면 슬픔이나 아픔을 더욱 희석시켜버린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강경환
다음 세대에게 알리는 게 목적이라면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걸 제일 강조하고 싶다. 뮤지션으로서도 마찬가지다. 4.3을 가사로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있지만, 예를 들어 한라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안에서 싹트는 사랑이야기에도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걸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20~30대 예술가들은 ‘함부로 표현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두려움을 느낀다.

김동현
4.3을 예술로 접근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이 이분법적 구도다. 경찰이 시민들을 진압하면서 여성과 어린아이가 다쳤고, 그래서 시민들이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고 치면, 돌을 든 너도 잘못이고 총을 든 너도 잘못이라고 똑같이 봐야 할까?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예술의 자율성은 충분히 존중하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4.3을 봐야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양정환
원래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 이주자들 가운데서 4.3에 공감해 자기 분야에서 4.3을 다루려고 하는 이들은 계속 많아진다고 본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경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부족하거나 모자랄 수 있겠지만 4.3에 다가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4.3을 해결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4.3을 위해 노력해온 예술가들과 바깥에서 온 이들이 융화되는 계기가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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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규 제주민예총 사무처장.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양동규
사실 4.3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업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가짐부터 그것에 대한 깊이, 역사, 본질이 이해가 돼야 한다. 여러 가지 4.3 행사를 열면서 워크숍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역시 지금은 제주민예총에 몸담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4.3이 뭔지 몰랐다. 가족 가운데 유족이 있어서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깊이 있게 알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 누구나 4.3에 관심 가지고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 시대에서 벌어지는 문제도 4.3 예술의 창작 소재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 4.3 당시 도민들이 요구했던, 미군정 철수와 통일 한국이 현실화됐다면 사드 같은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70주년을 앞두고 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4.3 발발부터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진상규명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짚어보고 전국적으로도 4.3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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