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3) 옥돔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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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돔죽. ⓒ 김정숙

바람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차다. 생선 말리기 딱 좋은 날이다. 이제 국민생선이 된 마른옥돔은 주로 구워 먹는다. 제주 사람들은 다르다. 구이는 물론 국(갱)이나 죽으로도 즐긴다.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죽 중에서는 마른옥돔으로 끓인 죽이 최고다. 신선한 옥돔으로 죽을 끓인다면 수긍 하겠지만 마른옥돔이라면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신선한 옥돔으로 죽을 끓여도 맛있지만 마른옥돔으로 끓인 죽은 더 맛있다. 생선이 마르면서 더해진 감칠맛 때문이다. 저장기술이 좋다보니 신선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돼서 안타깝다. 양념에 기대지 말고 시간이 가져다주는 맛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 전문점이 잘 운영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죽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거 같다. 태어나서 맨 처음 접한 음식이 죽이고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먹는 음식도 죽이 차지할 것이다. 재료도 다양하고 정성이 깃들어 있는 느낌도 받는다. 그래서 조리법이 간단해 보이지만 한 눈 팔 면 안 되는 음식 또한 죽이다.

옥돔죽은 쌀알이 살아있게 끓인다. 끓는 물에 옥돔을 넣고 살짝 익힌다. 살을 대충 발라내고 머리와 뼈만 뭉근하게 더 끓여 가시를 걸러낸다. 육수가 끓으면 고기와 쌀을 넣고 죽을 쑨다. 생선에 소금간이 돼 있어서 별도의 간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 되면 참기름과 쪽파나 통깨를 곁들인다. 

죽은 아픔을 달래주는 마음의 음식이기도 하다. 말린 옥돔은 반찬용이라기보다는 제례용으로 준비하는 생선이었다. 때론 비상용이 되기도 했다. 앓아 누운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옥돔죽은 최고의 정성이고 약이기도 했으니. 옥돔은 겨울 생선이다. 혀끝이 예민한 사람들은 봄이 무르익기 전에 여름까지 먹을 생선을 준비하여 냉동 보관한다. 생선지방이 산패하지 않도록 밀봉을 잘 해야 한다.

꾸덕꾸덕 말린 뒤 모양을 바로잡고 저장한다. 오래 둘 것은 냉동하고 일주일 안에 먹을 거라면 냉장실에서 숙성해가며 먹는 것도 좋다. 집집마다 날 생선을 사다가 말리는 일이 시장에 맡겨지면서 감칠맛은 예전만 못하다. 덜 말리고 냉동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오더라도 하루나 반나절쯤 더 말려서 저장해도 좋을 듯싶다.

옥돔죽은 자연스럽다. 시간조차도 양념인 것이다. 속전속결을 추구하며 살아온 우리가 잃어버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깊고 진하게 살 걸. 수박 겉핥듯, 더러는 냉동상태로 시간을 보내버린 거 같아 아쉽다. 내 생에 놓쳐버린 감칠맛이 그리운 날이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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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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