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8)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노대원 문학평론가·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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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2013. 사월의책.
혼자 밥과 술을 즐긴다는 ‘혼밥족’과 ‘혼술족’. 심지어는 광장 촛불집회에 혼자 참여한다는 ‘혼참러’라는 말까지. 이제 혼자 살기 또는 혼자 놀기는 대세인 모양이다. 언어가 한 사회를 반영한다는 논리를 따르자면, 우리 사회는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무엇인지 논하는 것이 사회학의 중요한 일이었다면, 이제 사회학마저도 ‘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따져 묻는 때가 왔나보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바로 그 물음의 집약체이다.

이 책은 학술적 저술이지만 동시에 저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역시 혼자 사는 남자 교수이기 때문이다. 대상과 사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논평하는 학자의 자리에서 혼자 살기에 대해 논하기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바로 그 정체성을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저자가 ‘자전적 사회학’이라 명명하는 까닭이다. 혼자 살기에 대한 이러한 거리 감각을 스스로 강하게 의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상상적인 관념이 문제적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떠도는 혼자 사는 사람의 이미지는 크게 양극단으로 갈린다. 하나는 독거노인의 고독사(孤獨死). 가난하게 늙고 병들어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무도 그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하는 사태를 일러 일본에서는 ‘무연사(無緣死)’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젊고 능력 있는 화려한 싱글.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한대의 자유와 무한대의 자기 향락을 추구하는 인간형.

두 이미지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실제로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노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한다. 그러나 모든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며, 가족과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것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싱글의 이미지 역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현실에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빛깔도 그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채롭다. 

그런데 고독사와 화려한 싱글 이미지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전형이 된 것은 어째서일까?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한 이미지와 관념은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이러한 상상적인 관념을 ‘싱글리즘’(Singlism)이라 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미지를 벗겨내려면 혼자 사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자는 어떻게 혼자 살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 

“혼자 살아도 냉장고는 있어야 하고 역설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4인 식탁 옆에 놓인 냉장고의 1/4 크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냉장고가 필요하다. 자주 시장을 보지 못하는 대신 저장 공간이라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98쪽) 

혼자 사는 사람의 냉장고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과연 혼자 살기의 체험 없이는 절대 발견될 수 없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나 역시 혼자 살기 시작한 후에야 1인용 냉장고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으니 이 대목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왜 그렇게 4인 가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왼손잡이의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혼자 살기란, 과장되고 극단화된 상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바로 이런 삶의 체험으로부터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 책이 ‘자전적’ 작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기 고백만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저자는 혼자 사는 삶을 이처럼 흥미롭게 고백하기도 하고 매우 철학적으로 성찰하기도 한다. 이 책이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몽테뉴와 버지니아 울프에 이르기까지, 혼자 살기를 실천하고 성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학자들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참조하는 것은 단지 호사가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리라. 혼자 살기의 철학이 저자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고독한 학자와 문인의 목록은 저자 자신의 실존을 위한 성찰의 땔감으로 활용됐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바로 그런 이유로 선택했다. 물론 ‘홀로 살이’의 철학과 혜안을 얻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었다기 보다는 혼자 살기에 도움이 되는 위안과 공감이 필요했다고 할까.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self-help, 즉 자기계발의 독서라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물론,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전제하고 있으며 확산시키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너를 도울 사회는 없다, 너 스스로를 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서기’라는 철학적 삶의 목표에 성공한 단독인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찰’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이 책이 여기서 그쳤다면 다른 많은 가짜 인문학 책들이 그렇듯이 사회적 관심은 거두어버린 채로 서늘한 서재에 은둔하는 개인의 초상을 내세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회학자답게 저자는 홀로서기의 철학에 그치지는 않는다. 혼자 살기를 바라보는 사회학자의 시선, 사회학적 상상력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략하게 다룬 느낌이 있지만, 주거공동체나 기본소득에 관한 대목이 그렇다. 

“기본소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개인들이 단독인이 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인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 또한 경제적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 불량한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자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해야만 했던 개인에게도 기본소득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239쪽)

결국 이 책 제목의 ‘혼자 산다는 것’은 1인 가구의 삶만을 뜻하지 않는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삶, ‘단독인’의 삶을 위해서는 혼자 살든, 여럿이서 살든 그 삶의 다채롭고 자유로운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홀로서기를 위해서도 ‘함께 살이’ ‘더불어 살이’가 필요한 것이다. /노대원 교수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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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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