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 달아맨 다리고기 끊어먹다 보면 없어지고 만다
  
제주 속설에는 번득이는 진리가 녹아 있다. 제주인들이 올차고 모진 삶 속에 진액으로 고인 축적물로, 생활철학이 스며있다. 척박한 섬에서 삶을 영위해 온 제주인들의 숨결이 묻어 나온다. 단내 나는 거칠고 가뿐 숨결이다. 그 숨결들에서 지혜의 샘이 솟았다. 샘은 제주 바닷가 용천수처럼 맑고 청량하다.

그뿐이랴. 제주 속설에선 물씬 제주 사람들의 땀 냄새가 풍긴다. 거센 바람 속에 척박한 밭을 갈고, 바다 깊이 나잠(裸潛)으로 무자맥질하며 일궈 낸 경험칙이라 금싸라기 같은 금언들이다.

갑인 흉년에, 섬을 휩쓸었던 역질(疫疾) 호열자 환란(患亂)만이 아니었다. 박토에 나는 것 없어 굶주리던 한빈(寒貧)의 시대, 초근목피를 닥치는 대로 섭렵하던 그 시절의 얘기일망정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못 살던 때의 얘기라선지 그만큼 즉물적이라 숨차고 적실하다.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적나라하다. 가장 제주적인 목소리,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말들, 곱씹을수록 제 맛깔이 우러나나니, 그 속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도(ㄷ+아래아)라맨 다리괴기’—상방 어느 구석, 아니다. 뒤뜰로 시원히 열어젖힌 문설주 위쪽에 돼지 다리 한 짝 매달아 놓던 풍경이다. 잔치 때 잡은 돼지 접작빼(생 갈비)일 수도 있다. 바람 잘 통하는 곳, 한여름 쉬파리도 범접 않는 데라 몇 날 며칠 매달아 둬도 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다. 먹을 것, 더군다나 보기만 해도 침 설설 끓는 고기 아닌가. 눈독 들여 놓으니 그냥 온전히 남아날 리 만무하다. 나며 한 점, 들며 한 점 또 갈 때 한 입, 올 때 한 입 끊어 먹는다. 견물생심이다. 참기름 먹은 고양이인데 그냥 있으랴. 한 점씩 끊어 먹다 보니 다리 통째로 달아맸던 고기가 간데온데없이 거덜 났다. 놀고먹으려 한 심보인가. 그새 고기 그렇게 축내며 게을러 빠져 할일은 않고 뒷손 진 채였을 것이다. 참 고약하게 돼 버렸다.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페리 인덱스(Perry Index) 373번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

겨울을 대비하느라 먹이를 부지런히 모으는 일꾼 개미와 따뜻한 계절 동안 노래나 부르며 시간을 보낸 베짱이 한량의 이야기다.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개미에게 구차하게 매달려 먹을 것을 구걸하고 개미는 베짱이에게 게으름을 맹비난한다.

개미 그 녀석 우습게 볼 것이 못된다. 작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존재의 견고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작은 사람이 큰일을 할 때 ‘개미가 절구통을 물고 나간다.’ 하거나, 저축을 잘할 때면 ‘개미 금탑 모으듯 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소한 잘못을 방심하는 사람을 경계해 ‘강둑도 개미구멍에서 무너진다.’고 하는가 하면, 개미의 작은 몸체로 가당치 않은 일을 할 때면, ‘개미가 정자나무 흔드는 격‘이라 한다. 아주 짧은 거리를 얘기할 때 ’개미 잔등이만큼 걸린다.’고도 하지 않는가. 이렇다 보니 고 개미란 녀석 여간 내기가 아니다.

여름철에 부지런히 일해 먹을 것을 비축해 뒀으니, 개미로서 노래만 부르며 일하지 않은 베짱이에게 일장 훈계를 할 만도하다.

하지만 각자도생이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다. 겨울을 무사히 나긴 했지만 개미에겐 봄, 여름, 가을 세 철은 그저 겨울을 위한 노동만 있었지 즐기는 시간 따위는 없었지 않나. 겨울을 무탈하게 난 개미에게 다시 돌아오는 봄은 또 한 번의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필수적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베짱이는 봄, 여름, 가을 그 긴긴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 셈이다. 그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했고 추억을 만들고 친구도 사귀고, 여러 가지 짜릿한 도전과 더러는 실패의 쓴맛도 봤겠지. 그냥저냥 할 것은 다해 봤다. 그러고서 죽었다.

제주의 옛 선인들은 따져 보나마나 틀림없이 개미 편에 섰을 테다.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에게서 ‘절구통을 물고 나르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정자나무 흔드는’ 힘을 목격하거나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개미보다 더 아끼고 더 부지런하던 우리 선인들, 능히 그러했을 법하다. 의식 속에 부지런한 개미를 품고 살았을 것이다. 루소우의 말처럼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그래서 오늘, 마침내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빈둥빈둥 놀다 남의 잔칫집 제삿집이나 기웃거리는 이, 빈털터리로 입만 성하던 실없는 사람, 겨울철 노름판에 앉아 집‧밭문서 날리는 작자에게는 손가락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짱이는 비웃음감, 질책과 배척의 대상이었다.

‘도(ㄷ+아래아)라맨 다리괴기 끄너먹당 보민 엇나,’ 골백번 맞는 말, 오늘의 세상을 내다보는 창(窓)이다. 일은 하지 않고 야금야금 먹을 것이나 축내는 사람을 놓고 들이대어 한 직설화법이다. 

언즉시야(言則是也)라, 저 멀리 〈탈무드〉에나 비슷한 말이 나오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다. / 東甫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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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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