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칼럼] 중증장애인 위한 자존감 회복, 기본소득보장 절실해

“고 대표, 나영 이야기 좀하게.” 

며칠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올 때 마다 응대를 소홀히 했더니 결국 사무실로 찾아 왔다. 한때는 잘나가던 건설역군이었는데 사고로 척추를 다친 지 몇 십 년, 가족과는 돌봄 문제로 연을 끄는지 오래된 나이 육십 초입의 독거 중증장애인이다. 종일 마시는 게 술이고 술을 마시면 지인에게 전화 하는 게 일상인 분. 십수년 지인인데 가끔 전화 올 때마다 술기운에 혓바닥이 꼬인 채 길면 이십 여분 자기 말만 하니 듣는 입장에서 고역이었다. 사무실로 오라고 했더니 이 분이 기어이 사무실을 찾아 온 것이다. 

폭염에 시원한 냉수 한잔 마시고 시작의 말은 “나 요즈음 살맛이 없다. 죽는 방법 이서라 이.” 벨기에의 휠체어 스프린터인 장애인이 올해 리우에서 개최되는 패럴림픽을 끝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예정이라는 인터넷 기사를 봤다고 대뜸 그 말을 한다. 필자도 그 기사를 봤다. 인권의 관점에서 안락사에 대해 깊은 고민의 지점이 있는 기사다. “형님. 미쳔 마씸. 그거 물어 볼 량으로 싹싹 더운데 저 만나젠 헌거 꽈. 안락사 우리나라는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익히 그를 봐왔고 의도를 알기에 강하게 되받아치고는 담배 한 모금에 요즈음 근황을 들어봤다. 육체적으로 힘드니 매사 화만 나고 통증을 술로 달래다 보니 자기 주변엔 휠체어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 술이 취하면 휠체어와 대화도 한다고 한다. 한동안은 장애인 행사에도 보이고 활동보조인도 파견하는 입장이라 바깥활동도 하는 가 했더니 다시 술로 망가져 병원과 집만 왕래 했다고 한다. 직업도 가져 보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중증이고 나이가 있으니 내가 봐도 일자리 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정적인 것은 남아 있던 약간의 돈마저 가까이서 돌봐주던 누구인가에게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것 같다. 모든 게 허망하다는 그에게서 세상에 대한 분노도 보인다. 예전부터 술이 문제니 주변 술친구 끊고 정신 차리라고 했는데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현장에 있다 보면 독한 맷집을 가진 장애인도 보지만 세상풍파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애인도 본다. 이분의 경우가 그렇다.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쉽게 남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를 이용한 나쁜 사람도 있는데 몇 번 이런 사람에게 당한 것이다. 직관적 경험에 비추어 그가 극단적 선택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죽는 방법을 물어 본 것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분에게는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 줘야 한다. 

자립생활이념과 서비스란 것이 있다. 장애인 스스로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갖고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제가 있다. 그 결정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며 결정이 적절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조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연금 등 기본소득은 보장해줘야 한다. 적지 않은 중증장애인이 타인이 결정에 의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에게서 방임되었거나 장애인생활(주거)시설에 있다가 독립하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그렇다. 사회와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된 표현으로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은행과 영화관도 가보지 않은, 가 봤더라도 조력을 얻어 혼자 계산하고 입장해 보지 않고 누군가가 이를 대신해 줘 버리는 경우 자기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이 분의 경우 장애와 술로 인해 자존감이 매우 낮아 져 있어 제대로 자기선택과 결정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이러한 환경을 단절시키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역량을 강화시키는 주변의 좋고 선량한 자원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돼야 한다. 이분에게는 우선 근거지에서 장애인 지원활동을 하는 선배가 있어 찾아 가 생활환경개선을 부탁드렸다. 처지가 비슷한 이 끼리의 동료상담도 실시할 것이다. 

또 하나, 이 사례는 재산정도를 중심으로 사회복지대상자를 관리하다보니 행정의 복지전달체계에 들어오지 않는 필연적 복지사각지대 사례이기도 한다. 재산소득중심의 관리체계는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재산을 고갈시켜야 복지전달체계상 대상자로 편입이 가능하다. 장애로 인한 의료와 교통, 사회적 이용물을 이용할 때 드는 추가비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가난해서 보호를 요구할 것인지 개인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낙인을 강요하는 셈이다. 

스웨덴과 영국 같은 사회는 장애로 인해 가난해지지 않도록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을 포함해 노동임금에 준하는 사회적 현금을 개별화 지급한다. 이른바 기본소득보장제도인데 장애인의 자기선택과 자기결정권을 신뢰하고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한다는 전제가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구성원인 장애인 스스로 재정 관리를 국가가 좀처럼 신뢰하지 않고 있고 선별적 복지체제라 도입되지 않고 있다. 그 분에게는 직업이 없더라도 기본의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지원과 자존감을 높이고 역량을 강화하는
169085_192036_0339.jpg
▲ 고현수 대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사람서비스가 매우 필요하지만 소득지원은 현재로선 불가하다. 

그 분에게서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여전히 술을 마신 것 같다. 그래도 본인은 술을 안마셨다고 하면서 사무실 한번 온다고 하니 믿어 주는 셈 친다. 술을 안 마셨다고 강한 부정을 한다는 것은 변화의 기운이 보인 것이다. 추석이 가까워 졌다. 안부를 묻는 전화를 내가 먼저 해야 할 성 싶다. 외롭고 지칠 때 누군가가 나에게 추석 잘 보내라는 전화를 해준다면 그것이 갖는 무게와 의미가 역시사지해보면 알 것 같다. /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