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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9) 슬픔 즐기기 / 송상


슬픔에 못을 박는다

슬픔의 각질이 두껍다

못이 튕겨 나간다

슬픔이 못 끝에서 파르르 떨다

더 단단히 움츠린다


슬픔의 뿌리를 캐어

소금국에 버무려

밥 말아 먹고 싶다는 생각


슬픔은 못보다 뾰족하고

대 뿌리보다 끈질기다

못 끝에서 눈 부라린 슬픔

슬픔의 손을 어루만진다

버릴 수 없어 꽉 껴안는다


송상 : 시집으로 『애벌레는 날마다 탈출을 꿈꾼다』,『등기되지 않은』 등이 있음. <한라산문학> 동인.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신 신영복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삶의 본질과 진실은 기쁨이나 즐거움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슬픔이나 아픔에서 오는 것이라는 가르침이겠지요. 한 인간의 삶을 온존하게 들여다보면 슬픔 혹은 아픔이라는 광막한 우주에 기쁨 혹은 즐거움이라는, 나타나자마자 사라져버리는 별똥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픔을 껴안고 슬픔을 즐긴다는 일을 생각합니다.
대 뿌리보다 끈질기고 못보다 뾰족한 슬픔이기에 그 뿌리를 캐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없겠습니까만 시간이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준 건 우리는 슬픔의 뿌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고 슬픈 슬픔을 꼬옥 껴안아주는 일뿐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송상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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