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19)] 제7대 도지사 길성운④

김 검사장은 귀임 이틀만인 4월21일 아침 제주~목포간 여객선 편으로 급거 상경, 도민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제주사회는 도의회와 검찰의 갈등문제로 온통 술렁거렸으며 길 지사는 이 문제가 점점 장기화되자 제주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고민이 컸다.

4월28일에는 광주고등검찰청 김희주(金喜周) 검사 등이 진상조사차 내려온 데 이어 김 검사장이 상경 11일만인 5월2일 매우 굳은 귀임하여 사태는 더욱 악화될 기미를 보였다.

김 검사장은 5월3일 모처럼 출근한 자리에서 "도의회 대표들이 비밀리에 중앙관계기관에 자신에 대한 중상 모략적인 진정행위를 벌이고 있는데, 싸움은 인격적으로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국가민족과 관계없는 문제를 일으키면서 선(善)을 악(惡)으로 갚고 인격을 중상하는 일은 심히 불쾌하다. 또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도의회가 도비를 들이면서까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재임 1년이 넘는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면서 드러내놓고 도의회를 비난했다.

신상묵 경찰국장 "중상모략 행위 비애국자로 엄단하겠다" 파문

이러한 가운데 신상묵 경찰국장은 경찰국 신축준공을 앞둔 국장실에서 "현재 다른 지방에서는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의회와 검사장의 싸움과 자유당의 내분, 각종 노동쟁의발생 등을 놓고 제주도가 전국에서 가장 중상모략이 심한 지역이라 하고 있어서 앞으로 중상모략행위에 대해서는 비애국자로서 엄단하겠다"고 말해 도의회를 또 자극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길성운 지사와 김 검사장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도의원들은 육지부 출신 기관장들이 서로 짜고 자신들을 탄압하려 하고 있다고 들고 일어섰다. 여기에는 북한 출신의 길 지사까지 지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신 국장은 문제가 엉뚱하게 비화되자 "지역문제를 가지고 악용하려는 제3자를 지칭한 것일 뿐이며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등 법호촌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도의회는 5월19일 진정단 6명이 돌아옴에 따라 길 지사를 비롯한 도청 국·과장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임시회를 열어 상경결과를 보고 받았다. 이날 회의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청객들이 대거 몰려 법호촌으로 야기된 두 기관 사이의 갈등문제가 얼마나 컸는지를 반증해 보였다.

진정단은 "그동안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검찰총장, 검찰국장 등을 만나봤더니 작금의 제주지역 문제를 이미 모두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검찰국장은 그 동안 보도됐던 신문 스크랩을 책상 속에서 꺼내서 의원 여러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김 검사장을 즉시 상경시켜 조사하겠다고 말했으며 법호촌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하겠다는 말을 분명히 밝혔다"고 소개했다.

전인홍 도의장-김창욱 검사장 감정싸움 '신문시상전'으로 비화

법호촌으로 야기된 도의회와 검사장과 싸움은 신문지상전(紙上戰)으로 까지 치달았다.

전인홍 도의장은 6월8일자 제주신보에 다음과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김창욱 검사장을 높은 지위와 연배로 보아 점잖은 사람이며, 사물의 식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존경해왔으나 그 동안 지켜본 결과로는 그런 기대를 걸만한 사람이 못되고 지금까지 그렇게 평가해온 나 자신이 후회스럽다. 인권옹호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도의회 의장을 가리켜 국민학교 졸업정도 밖에 안되고 정신병자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김 검사장은 전 도의장의 신문 기고가 있은 뒤 3일후 역시 제주신보에 「흉 잘 보는 도의장」이라는 글을 싣고 본격적인 지상전을 펼쳤다.

"도의회 의장이라는 전인홍 의장의 글은 분명코 개인의 글이 아니고 도의회 대표자로서의 글이 틀림없으며, 분하기 보다 오히려 가소로우며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도의장이 완전히 돌았다고 걱정하며 정신병에는 무슨 약이 좋다고 까지 말했다. 문둥이 보고 문둥이라고 하면 듣기 싫어하나 병을 낫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둥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전 의장이 이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그대로 흉내낸 것은 원숭이와 같은 행위이다"

김 검사장은 그야말로 전인홍 도의장을 「정신병자」 「문둥이」 「원숭이」로 비하하는 등 감정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사장의 글을 읽은 도의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두 기관의 싸움이 절정에 달할 무렵 김 검사장의 「사표설」과 「이임설」이 나돌았다. 때를 맞춰 김 검사장은 6월12일 대검찰청의 부름을 받고 급거 상경해 귀추를 모았다. 이때 중앙관가에서는 검사장이 제주도의회와의 불화책임을 묻고 대구고등검찰청으로 이동시킨다는 얘기들이 솔솔 새어 나왔다.

상경한지 무려 24일만인 7월2일 여객선 편으로 귀임한 검사장은 찾아온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동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 동안 도의회와 갈등이 있었던 것은 다같이 국가를 위해 싸웠던 것이었을 뿐 개인감정으로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말하고 자신의 이임을 밝혔다.

법호촌 싸움 4개월만에 김창욱 검사장 대구고검으로 인사발령

그러나 그는 도의회와의 마찰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듯 "일부에서는 도의회 의원 몇 사람을 처단하면 됐을 텐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끝까지 권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유쾌하게 생각한다"면서 "제주도민들도 전인홍 의장의 의분심을 존경하기 바란다"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전인홍 의장에 대한 일말의 감정이 남아있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1955년 3월11일 도의회가 법호촌 건설문제를 길성운 지사에게 질의한 내용이 도화선이 되면서 비화된 두 기관의 싸움은 결국 4개월만에 검사장의 이동으로 막을 내렸다. 대검찰청은 김 검사장을 대구 고검장 직무대리로 발령, 좌천의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제주도의회에 대해서도 모양새를 갖추었다.

7월26일 오후 제주항에는 길성운 지사를 비롯한 각급 기관장이 나와 떠나는 김창욱 검사장을 환송했다. 마침 김 검사장이 타고 갈 제주~부산간 평택호에는 제주시 승격추진을 위해 상경하는 전인홍 도의장이 동승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법호촌 건설로 야기된 감정을 풀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길 지사는 전 도의장과 김 검사장을 자연스럽게 조우 시키고 그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쌓였던 앙금을 모두 풀어서 가도록 종용했다.

4년여를 끌어오고 있는 제주읍의 시 승격안이 鎭海, 統營, 慶州邑 등과 함께 국회 내무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제주도의회와 제주검사장간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던 1955년 3월19일이었다.

제주시 승격안은 제2대 국회의원때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에 의해 계속 발의됐다가 통과 직전에 번번이 유보되는 불운을 겪어 제주지역 최대의 숙원문제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다시 3대 국회에서 발의된 승격안은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의 공동제안과 국회의원 102명의 서명으로 제출됐다. 그런데 함께 상정된 4개邑 가운데 제주시 승격안이 가장 먼저 발의된 데다 이승만 대통령이 특별지시로 승격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해는 국제해양도시로서, 경주는 우리나라의 고도(古都)라는 점에서 승격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길 지사를 비롯한 도의회와 읍의회, 지역유지들은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대중앙절충에 총력을 기울였다.

제주읍 시승격안 국회본회의에서 가결·확정

제주읍의 시승격안이 1955년 7월25일에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될 것 같다는 전문이 김차봉 제주읍장과 신두방 제주읍의회 부의장, 김용수 제주신보편집국장으로부터 내려온 것은 7월20일이었다. 다시 보내온 전문에는 4개읍의 승격안과 광주시의 확장안 가운데 제주읍의 시 승격안만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운영위원회에 회부됐으며 본회의 통과가 거의 확실하다는 희소식을 알려왔다.

곧 이어 제주읍의 시 승격안이 예상일보다 이틀이 지난 7월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는 낭보가 제주도청으로 전해졌다. 재적의원 129명중 101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됨으로써 제주도의 오랜 숙원이 해결된 것이다. 제주시 승격은 무려 4년을 끌어왔던 제주도의 최대 현안이었다.

제주읍이 市로 승격됐다는 낭보가 전해지자 제주신보는 호외를 발행하고 도민들에게 희소식을 알렸다.
제주시 승격진정단이 전해온 국회 본회의 통과과정은 이랬다.
이날 국회 본회의는 조찬규(趙璨奎) 국회부의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내무부차관이 출석, 정부입장을 밝혔고 병환중인 제주출신 김석호 의원이 배경을 설명했다.

△김종우(金鍾佑)의원=제주읍의 시승격안이 상정됐는데 경주 진해 충무 강릉 원주읍의 시 승격안도 일괄처리하고 마지막에 표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희석(韓熙錫)의원=시 승격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첫째는 현 단계에서 모두 시 승격의 필요성이 있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시 승격에 의한 지방주민들의 조세부담, 셋째는 국고부담들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지방주민과 국고에는 큰 부담이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 가옥세 이외의 차량세나 접객인세 등에는 거의 부담이 없고 직원증원에 따른 국고부담은 6개시를 통틀어 1000만~2000만화 정도이다. 그러나 제주읍의 경우는 1949년 인구조사때 시 승격조건인 5만명 이상을 넘었고 6.25동란중에는 피난민을 합쳐 16만명을 넘어섰었다. 이런 점에서 제주읍의 시 승격안만 다루자.

△鄭 내무부차관=조건만 갖추면 시 승격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다만 막대한 국고부담은 부인할 수 없으며 그만큼 주민부담도 커진다. 그러나 여러 의원들이 반드시 시 승격을 원한다면 내무부도 그 뜻에 따르겠다.

△양일동(梁一東)의원=주민부담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되느냐. 시 승격은 국회의원 선출에도 문제가 된다. 시 승격을 반대하지 않으나 파생되는 재정과 선거구 문제를 잘 검토해야 한다.

△韓의원=공무원 증원은 10명 정도이며 필요예산은 6개시를 합쳐 185만환이다. 문제는 북제주군의 의원수가 2명인데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경우 16만명에서 9만명으로 줄어들게 되지만 큰 문제가 안된다

△趙부의장=이의가 없으면 표결에 들어가겠다.

△김석호 의원=그 동안 몸이 아파 한번도 발언을 못했으나 오늘은 제주시 승격안이 상정됐기 때문에 일부러 나왔다. 제주읍은 지난 1949년 여수와 순천이 시로 승격될 때보다도 인구와 담세(擔稅)능력이 훨씬 높다. 지금도 순천시의 인구가 5만4095명인데 반해 제주읍은 6만771명이다. 그리고 순천의 세수입은 436만환 이지만 제주읍은 1819만환으로서 4배가 많다. 더구나 제주읍은 도청 소재지이기 때문에 의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바란다.(이후 표결에 들어감)

1955년 7월28일 길성운 지사는 제주시승격에 담화를 발표하고 "제주읍이 승격은 전도민과 더불어 기쁘게 생각하며 제주시민의 새로운 분발과 단합으로써 시의 면모쇄신과 항구적인 발전에 다 함께 노력하자"고 승격의 기쁨을 도민들과 나누었다.

제주시 승격이 이뤄지자 西歸面에서도 7월30일 면의회 주최로 서귀면 관내 기관장회의를 열어 서귀면을 서귀읍으로 승격시키자고 결의함으로써 제주시 승격의 바람은 도전역으로 파급돼갔다.

한편 제주시승격안이 통과된지 8일만인 8월4일 서울에서 돌아온 김차봉 제주읍장은 "제주시 승격은 제주출신 국회의원과 재경인사, 그리고 도의회와 읍의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치하하면서 시 승격에 따른 자신의 거취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시제(市制)가 실시되면 나는 충실한 산파역으로서 사무처리에 모든 힘을 다 할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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